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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내쉬ts흑] Once in my life?! Twice!

에딘MOON 2017. 7. 4. 22:57

내쉬ts흑 귀족썰....이 소설로 풀렸다면 외전이라던지 뭔가로 같이 다뤄봤을 프로포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도 없는데 외전이 먼저 글 되어 버림.....

귀족썰은 http://krbs-myun.tistory.com/19

안 읽고 봐도 별 상관은 없습니다 ㅎㅎ

내쉬 생일 축하해!!!! 누나가 많이 사랑한다!!!!!





내쉬 골드 주니어. 실패라는 것은 그의 인생에 단 한 번도 없는 승리자. 공작가의 후계자이자 클래스가 남다른 마법사.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참 많고도 많았지만 내쉬가 가장 원하는 수식어는 오직 하나, 쿠로코 자작가의 사위이다. 정확히는 쿠로코 자작가의 사랑받는 외동딸 쿠로코 테츠나의 남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생에 단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던 그의 인생에도 실은 오점이 있었노라 한다면 모두 믿지 않겠지만. 있었다, 완벽한 그의 실패담! 그리고 이것은 내쉬가 한 여인의 남자가 되기 전에 있던 그 일을 다룬 유일한 글이다. 실패를 왜 남기느냐 싶은 후대의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쉬 골드 주니어는 이 또한 소중한 사랑의 추억이라 남기고 싶다 밝혔다고만 말하겠다.





쿠로코 테츠나, 나의 소꿉친구이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처음 테츠나가 끓인 차를 마시느라 결례를 저질렀던 기억도, 무도회에서 처음 그녀를 선보이기 위해 한참을 발품 팔아가며 디자이너를 섭외하고 어울릴 재료를 찾아내던 기억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테츠나를 만나기 전의 내쉬 골드 주니어의 기억은 거의 없으니, 사실상 나의 모든 기억은 그녀와 함께 했고, 함께 하며 함께 할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테츠나가 타 귀족 영애들과 다르게 자란 것은 큰 행운이었다. 어차피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꼴은 절대 볼 생각도 없었지만, 무도회에서 남녀가 옷을 맞춰 입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기에 당당히 도장을 찍어뒀으니까. 단순한 선물이라 생각해서 답례로 보낸 커프스 버튼은 매일 경건한 마음으로 클린 마법으로 관리되며 어딜 가나 나와 함께 하는 보물. 보는 사람마다 커프스 버튼의 사연을 들었기에 공공연히 테츠나는 내쉬 골드 주니어의 신부라고 널리 알려졌다고 봐야겠다.




테츠나가 거절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럴리가!




이때의 내쉬는 몰랐습니다. 테츠나와의 결혼까지 가장 큰 난관이 테츠나의 승낙이었다는 것을.




테츠나가 알고 있는 결혼이란 무엇이었을까. 테츠나 역시 막연히 언젠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겠다고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대부분 귀족들이 가문의 이익을 위해 정략 결혼을 하는 일이 많았고, 연애 결혼은 극히 드물었기에 그녀의 상상 속 남편의 얼굴은 내쉬였던 적이 없었다. 자작가와 공작가, 그저 그런 물의 마법사와 클래스가 남다른 마법사. 밋밋한 생김새의 자신과 화려한 미남인 내쉬. 격이 다르니 엮일 리도, 내쉬가 굳이 자신을 택할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들 사랑없이 결혼하고 떨리는 마음도 그다지 없지만 그냥 살다 보니 살아지더라. 모두들 결혼 생활을 물으면 그렇게 답하곤 했다. 제 부모는 세기의 러브 스토리를 찍었다지만, 자신 또한 그렇게 될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러니 테츠나의 상상 속 신랑은 언제나 얼굴 부분이 비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녀에게도 꿈은 있었다. 적당히 평범한 남자가 평범히 중매를 넣고 평범히 결혼해서 평범히 행복한 삶을 사는 것.





쿠로코 자작가의 정원에 쿠로코를 닮은 푸른색 들꽃이 잔뜩 피었을 무렵, 내쉬는 그날도 양손에 뭔가를 잔뜩 사들고 테츠나를 만나러 왔다. 머리 장식부터 시작해서 막 나왔다는 탑 디자이너의 구두 (마치 깃털 위를 밟고 서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고 했다.) 그녀가 사랑할 만한 티 푸드.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더욱 신경 쓴 모습에, 받는 이의 취향을 고려한 선물들, 먼 거리를 감수하고 매번 직접 오는 행동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이였건만, 테츠나만은 그것을 몰랐다.




테츠나가 조심조심 마법으로 정수한 물로 차를 끓일 준비를 할 즈음, 내쉬는 결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취향만 고려해서는 테츠나가 행복한 결혼식을 할 수 없었기에,




 "테츠나, 식은 언제 올리는 게 좋을까?"



베일을 쓴 테츠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물었다.






 "겨울이요."



내쉬의 이미지는 아무래도 추운 계절이 어울리는 것 같아 테츠나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손에선 직접 따서 말린 꽃잎이 찻주전자로 하나하나 흘려 보내지는 중이었다.




테츠나의 흰 피부는 하얀 눈과 하얀 베일, 눈부신 드레스와 함께라면 더욱 아름다울 거라 생각이 들어 괜히 내쉬의 볼이 붉어졌다. 다만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카데미 시절, 얼마나 추위를 탔던가.




 "....괜찮겠어? 추위 많이 타잖아."


 "옷을 많이 입으면 되죠."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낸 찻물을, 화려하게 꽃이 피어난 찻잔에 따르며 테츠나는 또다시 덤덤히 대답했다. 그녀의 상상 속, 제 옆에 서있는 남자는 내쉬였던 적이 없지만 막연히 테츠나는 생각하곤 했다. 그의 결혼식, 그녀의 결혼식 서로의 결혼식에 당연히 참석해서 직접 축하해 줄 우리 두 사람.



내쉬의 신부는 어떤 사람일까. 그와 어울리는 화려한 미녀일까. 내쉬처럼 겨울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면 더욱 아름다운 결혼식이 되겠지. 조금 추위를 타지만, 너무 부해보이지 않게 옷을 껴입는다면 무난히 내쉬에게 웃는 얼굴로 축복의 말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드레스를 두꺼운 재질로 하고 싶단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테츠나의 대답에 내쉬는 아리송했지만........뭐라고 물어봐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슥 내밀어지는 찻잔에 말없이 한 모금, 두 모금 테츠나와 조용히 그 순간을 즐기고 말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쿠로코 테츠나의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뭔들 어떻겠는가.





그날부터 내쉬는 조금 많이 바빴다. 귀족 자제들의 결혼식이 원래 요구하는 게 많긴 하지만, 차기 공작의 결혼식이니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렇지만 숨막힐 듯한 바쁜 시간에도 내쉬는 오랜만에 테츠나를 만나러 갈 준비를 했다. 결혼식에 앞서 약혼식도 한 번 해야겠고 - 프로포즈라는 개념이 없었다. - 내쉬가 보기에 테츠나는 당장이라도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완벽한 미모였지만, 다른 귀족 영애들처럼 혹 필요한 준비가 있을까 싶어 미리 언질을 줄 생각이었다.




 "결혼식은 예전에 말했던 대로 겨울에 할 거야. 조금 추울지도 모르지만. 드레스는 다른 영애들의 경우, 겨울에 결혼하게 되면 부해보이는 게 싫다고 마법으로 보온 효과를 준 옷감을 고른다고 해서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


 "아, 벌써 거기까지 얘기가 되었나요. 빠르네요."


 "약혼식은 가을에 할 거야. 시간이 조금 촉박한 감은 있지만, 풍요로운 계절에 많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축복받는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좋은 생각이네요, 내쉬 군. 행복히 잘 살면 좋겠습니다."


 "그 때 입을 옷은 미리 맡겨서 받아왔어. 한 번 입어보고 불편한 부분 있으면 말해주겠어?"


 "가장 돋보여야 하는 건 신부겠죠?"


 "그렇지."


 "....그런데 이 옷은, 신부보다 더 돋보일 만큼 화려하다고 생각합니다....."


 "...........어?"


 "......................?"





멍하니 바라보는 내쉬의 표정에 테츠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옷의 치수라던지 색상은 늘 그렇듯 본인에게 잘 맞게 나왔지만, 옷에 달린 보석들이라던지 장식은 너무나도 화려했다. 이 옷을 입고 간다면 글쎄, 아무리 아름다운 신부라도 이목을 끌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테츠나."


 "네, 내쉬군."


 "지금까지 조금 이상하다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내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내가 결혼할 상대는 테츠나, 너야."


 ".......네?"





결혼 준비로 바쁘던 시간 동안에도 틈만 나면 보냈던 선물, 그건 뭐라고 생각했던 걸까. 쿠로코 자작이나 자작 부인을 일찍이 포섭해 두었고 겨울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고 신나서 이야기도 했었다. 정작 신부가 될 테츠나만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당혹스러웠지만 괜찮다. 지금이라도 말하면 되겠지.





 "자작님께 아무 말도 못 들었어?"


 "그러고 보니 요전 날 "내쉬 군에게 이야기 들었는데..." 하고 말을 꺼내 오시길래, "네, 내쉬 군 결혼 이야기라면 알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는데........"


 "아............."



아무래도 자작부부와 테츠나 사이에도 의사소통의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자작님께도 허락 받았어. 테츠나, 너와 같은 길을 걷고 싶어."





테츠나가 날 사랑하는 진 모른다. 내쉬 골드 주니어가 처음 만난 이래로 쭉 그녀를 사랑해왔다고 해서 그녀도 당연히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어쨌든 누군가와 할 결혼이라면, 자신과 결혼하는 게 테츠나에게 좋을 것이라는 것은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영특한 테츠나라면 자신을 고르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죄송하지만, 내쉬 군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


 "드레스는 제게 맞춰 제작하셨으니 돌려드린다고 해도 곤란하시겠죠. 장식을 줄이는 방법을 알아봐야겠습니다. 좋은 영애를 만나서 결혼식을 하신다면 그 때 입고 갈게요."





그랬기에 거절당한 이 순간을 내쉬는 꿈에서조차 보지 못했던 것이다.





퍽 단호한 말투와 굉장히 격식을 차려 꾸벅 인사로 거절한 테츠나의 모습은 계속 내쉬의 머릿속에 머물렀다. 말이야 늘 그녀의 신랑은 나 뿐이라고 하고 다녔지만, 테츠나가 싫다고 한다면 순순히 물러나야지 다짐은 했다. 그녀가 자신을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당연히 테츠나와 결혼하는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도 했다. 쿠로코 테츠나가 내쉬 골드 주니어를 싫어한다면, 그동안 그녀를 찾아갔을 때 보여주던 미소나 제 취향에 딱 맞게 끓여진 차는 무엇이겠는가. 테츠나가 처음으로 잘하는 마법을 찾았다며 깨끗한 물을 만들어 내다 제 머리 위에 쏟고 미안해하며 손수건으로 꾹꾹 눌러주던 순간은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가.



싫어한다면 하지 않았을 일들이다. 단순히 친구 사이라도,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남녀 사이에 선은 있지 않은가. 무도회 때 테츠나에게 키스를 했다면 달라졌을까? 내쉬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메이크업을 부탁했던 과거의 자신이 살짝 미워졌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 사이라기엔, 테츠나에게만 보여준 내쉬의 미소, 친절 그것들이 다른 이들에게 할 때완 너무나도 달랐는데. 에스코트할 때 내밀었던 손은 오직 테츠나만을 위한 손이었고 매번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그녀에게 어울리는 의상을 선물했다. 테츠나가 잘 몰랐기에, 사교계에 데뷔함과 동시에 찍었던 도장.



테츠나가 잘 몰랐기에, 상상 속에서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우리의 결혼.







차기 공작인 내쉬에게 들어오는 혼담은 생각보다는 적었고 생각보다는 많았다. 내쉬가 하도 공공연히 쿠로코 테츠나의 남자라는 표시를 냈기에 대부분은 아예 이야기라도 넌지시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늘 그렇듯 당당히 연락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외모가 자신있거나 능력이 뛰어나거나 집안이 뛰어나거나. 분명 그 목록에는 테츠나보다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도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테츠나에게 거절당한 직후, 이들 중 한 명에게 연락하여 가문끼리의 화합을 다짐하며 원래 내쉬의 생각처럼 가을에 약혼하고 겨울에 결혼식을 올리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내쉬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동생아."


 "......약올릴거면 가. 지금 장단 맞춰줄 기분 아니니까."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티를 내면 뭐하니. 정작 테츠나 본인이 몰랐는데."


 "............."


"하다못해 거절당한 이유라도 듣고 오면 마음이 편하겠니?"





누이의 말에야 내쉬는 번뜩 고개를 들었다. 그동안 테츠나와 있었던 약간의 스킨십, 순간들이 거짓일 리는 없었다. 확실히 테츠나는 거절은 했지만 자신을 싫어한다고 한 것도 아니었고, 내쉬가 그동안 봐온 테츠나라면 싫었다면 진작 자신을 내쳤을 터였다. 자신이 싫은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뭘까. 테츠나는 가끔 지나치게 겸손한 면이 있었지.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가.






어쩐지 정답에 가까워진 기분이어서, 내쉬는 안심이 되는 한편 의외의 장막에 갇혀버린 상황에 슬프기도 했다.






평민들의 결혼은 귀족들의 결혼에 비해 연애 결혼의 비율이 꽤 큰 편이다. 자연스레 사랑을 싹틔우다 함께 일생을 살아갈 약속을 하는 편인데, 그 약속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들에 피어있는 꽃들 중 예쁜 것들만 골라 꺾어 내밀었다던지, 다소 투박해 보일지언정 직접 만든 반지를 줬다던지. 귀족들의 연애 결혼은 극히 드물었지만 결혼까지의 길은 비슷했을 터였다. 다만 평민들과 다르게 조금 더 화려한 꽃다발이나, 비싼 반지의 존재가 있었겠지.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진지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했다.





테츠나가 그랬듯 내쉬도 당연히 생각한 게 있었다. 그냥 어느 날 결혼하기로 정하고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하여 테츠나와 함께 사는 삶. 그러나 그 과정 속에 '프로포즈' 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귀족들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는 시대이기도 했고. 허나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서라면 뭔들 못하겠는가. 내쉬는 평민들 틈에 조용히 숨어 지켜보았던 여러 프로포즈들을 보며, 오직 테츠나와의 결혼을 위해 그 어려운 것에 기꺼이 도전하기로 했다.





한 번 거절했던 사이라 서먹하게 대하면 어떡하지, 라는 내쉬의 걱정은 정말 쓸데없었다. 한참을 방황 끝에 자작가로 향했지만, 테츠나는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게 차를 건네고 일상 이야기를 건넸다.




 "저기, 테츠나. 할 말이 있어."


 "네, 하세요."


 "테츠나 너와 결혼하고 싶어. 내가 싫지 않다면, 나와 결혼해주겠어?"




형편없이 떨리던 목소리가 그렇게나 볼품없게 들릴 줄은 몰랐다. 품에서 꺼낸 꽃다발도 분명 꺾었을 때는 제법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시들어버린 들꽃보다도 못한 느낌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 다시 바라본 꽃다발의 초라함, 자신의 우스운 모습에 내쉬는 차마 계속 버틸 수 없었다.




귀족들 중에는 정략 결혼 후 서로 취향이 맞는 이와 맞바람을 피우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별 일이 없다면 반려자 한 사람과 쭉 행복히 사는 이가 많았다. 어떤 경우든 약혼식과 결혼식이 그들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심지어 '프로포즈' 를 한다던 평민들도 생에 딱 한 번인 만큼 - 별 일이 없다는 가정에서 - 인생에 가장 아름다울 순간으로 만드려고 하지 않던가.




그렇지만 그렇게 넘겨버리기엔 내쉬의 프로포즈는 너무나도 볼품없었다. 인생에 한 번 뿐이라는 기회를 허망하게 날린 것도 어이없었지만, 그대로 넘어가는 것은 더욱. 테츠나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내쉬는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뒤에서 테츠나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점점 작아지는 자신을 느끼며.





그 뒤로 테츠나가 전서구를 날린 것도 몇 번. 하지만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처음의 초라한 기억 따위는 저 멀리로 날아갈 만큼 멋진 프로포즈를 다시 하자. 밤을 새서 어울릴 것이 무엇일까 찾기도 하고,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고민도 하고. 너무 피곤할 때면 초라했던 첫 순간을 자꾸 떠올리며 버텨냈다.





 "내쉬 군, 안에 있는 거 다 알아요. 문 열어요!"




작지만 강단있는 목소리가 어느새 잠든 내쉬의 귀에도 들려 왔다. 그토록 피하던 테츠나였으나, 내쉬는 도망갈 생각도 못 한 채 문을 벌컥 열었다.




 "이 문을 그렇게 쾅쾅 두드리면 손 다 상하는데....어디 좀 봐."


 "지금 제 손을 볼 때입니까! 연락은 왜 안 해요!"


 ".....그게, 그러니까........"


 "결혼 거절했더니 멋대로 또 통보하고, 대답을 하기 전에 도망도 가버리고. 형편없군요, 내쉬 군. 후작님께서 아시면 어떻게 그런 예의없는 행동을 했냐며 통탄하실 겁니다."




허리에 손을 척 올려놓고 말하는 테츠나의 모습은 내쉬에겐 조금 낯선 모습이었다. 예의없는 행동을 했다며 화를 내는 테츠나의 모습도, 일반적인 귀족 영애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렇지만 내쉬는 혼나고 있는 상황마저도 어쩐지 나쁘지 않았다.





 "저는 아직도 내쉬 군이 왜 저랑 결혼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솔직히 처음 거절할 때는 저보다 좋은 혼처도 많을 텐데 단순히 곁에 있어서 편하게 느껴서 착각했나 했어요."


 "착각이 아니야!"


 "우리가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까 우정을 사랑으로 착각했나 해서 거절했고 한동안 연락이 없길래 다른 분과 혼약을 맺으려나 했지요. 그리고 한참만에 나타나서는 또 결혼하고 싶다고 했지요."


 ".....그건........"


 "누님께서 요즘 내쉬 군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매일 변장하고 평민가에 간다고 하셔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저녁 무렵이면 쓱 나갔다 온대서 무슨 이상한 꾐에 빠졌나 했다고요!"





문을 두드리느라 빨개진 손만큼이나, 테츠나의 얼굴도 터질 듯 붉었다. 테츠나가 이렇게까지 격양되는 일도 있구나, 신기한 일 투성이었다.





 "대체 뭘 하고 다니나 싶었는데, 그 날 결혼하고 싶다고 하기에 평민들의 '프로포즈' 를 공부했구나 싶었어요."


 "....어? 알고 있었어...........?"


 "잊었나 본데, 쿠로코 테츠나는 귀족 영애들 중에 유일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길거리를 쏘다닌 소녀랍니다."


 "....아.............."


 "뭐, 다 좋아요. 저는 평민이든 귀족이든 사랑하는 모습은 별반 차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당신이 무엇을 하든 괜찮아요. 그렇지만 어떻게 그래요? 대답도 안 듣고 도망가다니!"


 "거절당하는 건, 솔직히 두렵지만 괜찮아. 받아줄 때까지 도전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데...........염소처럼 떨리던 목소리, 다 시들어버린 꽃다발, 초라하게 느껴질 그 순간을 테츠나 네 기억 속에 남기기는 좀.........."


 "그러니까 정말로 바보입니까, 내쉬 군. 왜 지레짐작하고 도망을 가지요? 그 뒤에 다시 오려나 했더니 한참 동안 오지도 않고, 연락도 안 받고. 한 번 끝났다고 포기하는 나약한 남자로 키운 적 없어요!"


 "....일단 날 키운 건 테츠나가 아니지만 말야.........."





어느 새 얌전히 무릎을 꿇은 채 혼나는 내쉬의 눈에 그제야 테츠나의 모습이 전부 들어왔다. 드물게 최선을 다해 꾸민 모습이었다. 구두부터 드레스, 머리 장식이며 한 번쯤 내쉬가 예쁘다고 말했던 차림새였다.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는 듯 싶더니 테츠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둔한 편입니다, 저."


 "...알고 있어. 휘청이는 테츠나를 몇 번이나 잡아봤으니까."


 "그래서 깨닫는 게 조금 늦었어요. 어차피 결혼할 거라면 조금이라도 조건이 좋은 쪽이 좋을 거라고 내쉬 군이 모모이 양 결혼식 때 이야기했었죠. 하지만 조건을 떠나서 전 내쉬 군이 좋..........."




성급히 뻗은 손이 테츠나의 입에 거칠게 부딪쳤다.




 "아, 미안.......하지만 그 이상은......내가 먼저 말하게 해줘."


 "네?"


 "테츠나가 먼저 말해주는 쪽도 정말로 기분 좋겠지. 하지만, 이대로라면 영원히 기회는 없을 거 같아서. 내 마음 앞에 솔직해질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해."





살짝 부어오른 입술을 꾹 다문 채 테츠나는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내쉬가 지난 날 상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명소도, 아름답게 세공된 세련미 넘치는 의자도, 깔끔히 정돈된 옷차림도 아니었다. 되려 아무것도 없이 황량한 방과 실용성만을 생각한 다소 투박해보이는 의자, 며칠 밤을 새서 의례없는 추레한 자신의 모습.





 "테츠나를.......사랑해.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았어. 그 어떤 사람을 보아도 너 말곤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아."




밖으로 들리지 않을까 싶을 만큼 두근대는 심장과 몇 번이고 되뇌이며 연습했음에도 떨리는 목소리. 마법으로 슬쩍 만들어 낸 한 송이 꽃은 만든 이의 마음이 불안정했던 탓인지 꽃잎의 크기도 들쑥날쑥. 그럼에도.




 "당신의 곁에 설 수만 있다면 가진 것을 모두 내려 놓아야 한다고 해도 좋아. 테츠나가 날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누군가와 해야 할 결혼이라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네 몫까지 사랑할 테니까........그러니까 나와 결혼해주면 좋겠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줄게!"




귀까지 벌겋게 된 채로 내쉬는 마지막 한 마디를 마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벌써부터 꽃잎 한 장이 펄럭 떨어져 내렸다. 두 번쩨 청혼도 형편없었다.





 "인생에 한 번이나, 두 번이나 큰 차이는 없는 모양이네요?"


 "...윽.........."


 "내쉬 군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 내쉬 군이 당당하게 드레스를 건넸던 그 날보다 다 시들어버린 꽃다발을 건네줬던 그 날 더 기뻤습니다."





내쉬의 손에서 조금은 이상하게 생긴 꽃 한 송이를 쑥 빼내며 테츠나는 즐거운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두 번째 들어보니 확실하게 이번이 더 행복합니다. 내쉬 군이 이렇게 부끄러워 하는 모습은 처음이예요.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모습을 보고 싶어서 프로포즈를 하던 걸까요."


"..........평생 놀려도 좋아! 나랑 결혼해 줘!"


"이건 알고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꽃다발 선물에서 한 송이 꽃을 다시 주머니에 꽂아주면 승낙의 표현이라는 것을."




테츠나는 품에서 소중히 갈무리한 바싹 말라버린 꽃 한 송이를 내쉬의 주머니에 슬쩍 꽂고는 빙글 드레스 자락을 날리며 한 바퀴 돌았다.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아직 해석하고 있는 내쉬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처음 봤던 그 모습 그대로 우아하게 인사를 하고 총총 걸어 나갔다.




"............자, 잠깐 테츠나 이거 나랑 결혼해준다는 거지!?"





처음으로 입맞춤을 당했다는 것도 - 내쉬도 손등에 인사치레로 한 적 밖에 없으니 선수를 뺐긴 셈이었다. - 테츠나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기회를 놓쳤다는 것도 떠올리지 못한 채 내쉬는 이미 닫힌 문 너머로 돌아오지 않을 질문을 외치고 있었다.








"엄마는 고백 같은 거 받아본 적 있어?"





테츠나와 내쉬를 쏙 닮은 딸 아이는 테츠나 드레스 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과연 이제 그런 이야기들이 궁금할 나이가 되긴 했다.





내쉬 골드 주니어의 그 우렁찬 외침을 누이들이 다 소문내며 세기의 사랑꾼으로 만들어 버린 직후, 귀족들 사이에서도 프로포즈라는 개념이 생겼더랬지. 테츠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럼, 2번이나 열렬한 고백을 받아보았는 걸."


"그 사람이랑 어떻게 되었어?"




아직 제 아비의 이야기임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딸은 되물었다. 어쩌면 2번이라고 하니 1번은 제 아비가, 1번은 엄마를 사랑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네가 태어난 후에도 저녁마다 놀리고 있단다."


"다녀왔어, 테츠나. 우리 공주님, 엄마랑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


"엄마가 2번이나 고백받은 이야기!"







그리고 오늘도 놀릴 예정이란다, 하고 웃는 테츠나의 미소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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