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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결혼 이야기 그 두 번째, 황흑. 가상 결혼 프로그램이라기보단, 보통 셀럽들의 공개 연애담같은 느낌. 수많은 공인된 셀럽 부부들이 거쳐간 프로그램인데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두 사람이 희망하는 기간&콘텐츠를 방영. 장점은 방송 기간과 내용에 따라서
두 사람을 응원하고 차차 (기혼자의 세계로) 떠나보낼 준비를 팬들이 할 수 있다는 것. 단점은 결혼 전제로 사귀는 셀럽이 대상인 관계로 파담에 이를 경우 웬만해선 (다른 사람과도) 결혼을 할 수 없다. 그럴 것이 전국민이 연애사를 (보여준만큼) 아는데
어느 누가 그런 사람과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쉽겠는가. 뭐만 하면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들과 싸워야 함. 아무튼 보통 결혼을 하더라도 팬들이 심각하게 줄지 않을 분위기가 형성된 뒤 출연한다. 각 계 유명 인사들 본인이나 자녀가 나오기도 하는데
키세는 셀럽 부부 자녀로 나온 케이스. 어릴 때 데뷔해서 쇼윈도 셀럽 부부들을 많이 접해서 본인이 숱한 로맨스를 찍어 왔지만 사랑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음. 호적을 굳이 더럽히고 싶지도 않고 결혼 안 해야지 싶은데 소문난 사랑꾼 키세 부모님은 아들도
사랑의 기쁨을 알며 행복하길 바라서 이따금 만나는 사람 여부나 좋아하는 관심사 물어보는데 키세는 그마저도 싫은 것. 누나들도 전부 이른 나이에 파격적인 행보로 결혼하며 깨볶고 살고, 키세 가문 핏줄에 사랑꾼 피라도 흐르는지. 그러다보니 일찍부터 키세도
좋은 사람 만나서 가겠네 팬들이 생각했을 것이다. 촬영장 밖에서는 꽤 쌀쌀맞달지, 그다지 상냥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겐 다르겠지. (☜누나들 케이스로 모두가 이렇게 생각) 키세가 조금씩 나이를 먹을 수록 다들 키세 가문 사람치곤 늦네 하고
기사건 뭐건 댓글에 꼭 일정 비율 이상 키세료는 언제 갈까? 이런 반응이 올라왔음. 그럴 수록 키세의 생각은 확고해졌음. 드라마에서의 내 연기력도 외모도 아닌, 결혼 여부가 왜 관심을 받는 검까. 결혼을 하면 이런 일은 줄겠지만 아무나 붙잡을 수도
없고. 그러다 키세는 문득 연예계에선 아주 유명하지만 일반인들은 전혀 상상도 못하는 쇼윈도 부부를 생각해냈음. 남모델은 금방 전화를 받았음. 언젠가 같은 화보를 찍었을 때 연락처를 교환한 덕이었을까. 그는 아무렇지 않게 프로그램에서 겉보기에 그럴싸하게
행복한 연인을 연기했더니 모두가 그러려니 믿었다고 답했음. 사이에 아이도 있으니 그냥 의리로 같이 사는 친구 느낌이지만 그래도 모두 로맨스부부로 알더라는 얘기도 함께. 프로그램에 나오고도 결혼하지 않은 케이스가 있을까, 키세는 검색해보았음. 다행히도
있었다. 그들은 그 뒤로 결혼하지 않고 쭈욱 독신으로 살거나 조용히 결혼 생활을 (사실상 활동을 거의 그만두고 해외로 가는 경우가 많았음) 하고. 사람들도 언급을 피하는 듯 했음. 이 프로그램에 나갔다 파담하면 가족들도 팬들도 얘기를 하지 않겠구나
생각이 미친 키세는 이제 상대를 고민해야 했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키세 료의 상대가 흥미를 끌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아주 유명하거나 혹은 모두의 흥미를 이끌 요소를 넣어야해. 하지만 유명한 사람이라면 언제고
미리 계약한 내용을 폭탄 선언 해버릴 수도 있고 어쩌면 자존심을 긁었다고 시작도 전에 까발릴 수도 있지. 그럼 흥미를 이끌어낼 요소가 있는 사람일까. 뭐가 좋을까? 사람들은 비극과 희극을 사랑해. 어렵게 살던 사람의 신분상승. 이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정리되자마자 키세는 아카시에게 연락했음. 교토의 유명한 조직 보스니까 나중에 뒷처리도 무난할 테고. (무력이든 아니든) 아카시는 묘한 웃음소릴 내더니 마침 제격인 사람이 있다고 했음.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가 찾아가던 고아원 출신의 남자.
시오리가 그를 만난 건 일 년에 1번 정도였지만 눈빛이 죽어 있거나 뭔가를 기대하며 약삭빠르게 구는 아이들 틈에서 유일히 지식을 갈망하는 이였다고 들었음. 시오리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 꾸준히 원하는 책을 구할 수 있게 해두었는데
학년이 오를수록 책 단위도 상당히 늘어나 제법 지불금액이 높아졌음. 아카시 가문에겐 푼돈이나 다름없지만 성실한 성격 때문인지 졸업과 동시에 후원을 다른 사람으로 돌렸음. 별일이네요. 아카싯치가 성실, 이라는 표현을 다른 사람한테 쓰고. 아아.
하지만 정말로 어머니 무덤에 십 년 넘게 매 기일마다 찾아가는 녀석은 그 하나거든. 시오리가 거둔 사람이 교토에 제법 되긴 했음. 그런데 그 중 그녀의 묘비가 어딨는지 묻거나 위치를 알더라도 찾아가는 사람은 없었음.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카시 가문의
으리으리한 건물들 사이를 뚫고 뚫는 심장부 격인 위치에 수많은 조직원들의 시선을 감당하며 찾아가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었음. 아카시는 그간 늘 바빠서 기일에 짧은 시간만 찾아갔었는데 이제 꽤 일도 궤도에 올랐고 이번 기일은 종일 집에 있었다 했음.
십 년째 되는 기일이기도 해서 약속 따위도 잡지 않았고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아카시의 귀에 누군가 들어선 소리가 미약하게 들렸음. 상주하는 인원이 몇인데 아무도 말을 안하지? 싶어 슬며시 창 밖으로 부두목을 불렀음. 시오리님 기일마다 찾아오는 청년이라
다들 아는 사이라 그냥 조용히 보냈다는 말에 아카시는 가끔 밤 늦게 찾아갔던 날 생전 어머니가 사랑하던 꽃이며 화과자, 책이 놓여있던 날이 있었음을 쉬이 떠올릴 수 있었음. 해가 뉘엿뉘엿 산을 넘어갈 무렵에나 남자는 겨우 다시 나타났고 아카시는 그를
불러 티타임을 가졌음. 교토 제일의 남자를 앞에 두고도 그는 안정되어 보였고 그것과 달리 실은 하루하루 겨우 먹고 살고 있다는 것도. 글을 쓰고 싶은데, 먹고 살기 바빠 변변한 글은 쓰지 못했다며 웃었지만 글솜씨가 상당했다고 아카시는 잔잔히 말했음.
하지만 내가 후원하는 것은, 그가 이미 거절한 일이라서. 그렇지만 테츠야에겐 꿈을 향한 열망이 있어. 료타의 제안을 거절하진 않을 거야. ...혹시 나중에 헤어지면 아카싯치가 절 묻어버리거나 하진 않을 검까? 그럴리가. 그저 다음 어머니 기일에는 그가
책을 들고 와줬으면 싶을 뿐이야. 아카시는 본인이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음. 프로그램 출연하겠다는 얘기도 여기저기 흘리며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차를 보낼테니 그걸 타고 오면 된다는 아카시의 연락이 있었음. 가격도 상당하지만
재력이 있어도 들어오기 어렵다는 예약제 고급 요정이었음. 그 중에서도 가장 품격있게 차려둔 별채 건물이었다. 발에 닿는 자박자박 조약돌 소리와 함께 느긋히 경치 구경을 하다 다실에 들어서니 아카시가 예의 그 묘한 미소로 그를 맞았음. 별 거 아닌 척
했지만 지금 장소 선정이나 그의 옷차림 따위는 글쎄, 상당히 아끼는 게 느껴지는데. 그리고 제가 오늘 만나러 온 남자, 쿠로코 테츠야는 낡았지만 단정한 의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음. 얼굴을 자세히 보면 꽤 미색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인상에 확 남진 않고
평범의 극치를 달릴 듯 한 조건들. 그런데 아카싯치, 과연 신데렐라 스토리라며 주목받긴 좋을텐데 제가 어디에 반했다고 해야 함까.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럴싸한 게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돌려 묻는 의도를 알아챈 아카시는 말없이 수첩 하나를
쓱 내밀었음. 정갈한 글씨로 써내려간 짧은 글귀들은, 제법 괜찮았음. 차례로 음식이 나오는 동안 키세는 쿠로코를 지켜 보았음. 신기할 정도로 아카시와 똑같은 절도 있는 식기 사용.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형제라 해도 믿을 것 같았음. 갈치 한 토막을
아주 깔끔히 발라 내는 것도 꽤 마음에 들었음. 청결을 좋아하기도 하고 먹는 양은 아카시와 딴판이었지만 깨작깨작 입맛 떨어지게 먹는 것도 아니니까. 옷이 조금 낡아서 그렇지 단정한 매무새도 그렇고 잘 정제된 듯한 글도. 어쩌면 제법 잘 맞는 파트너려나
헤어질 때도 뒤탈없이 잘 끝날 것 같았음. 키세는 준비해온 두툼한 계약서류들을 내밀었음. 조건은 이미 들었겠죠. 계약 연애였다는 것을 밝히는 것도, 향후 관계를 이어가려는 시도도 금지임다. 대신 대가는 확실히 줄 테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차분히 키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씩 서명하는 쿠로코의 손은 꽤 거칠었음. 어쩐지 마음에 안 드는 걸, 무심코 키세는 쿠로코의 손을 잡았음. 저기, 관리 좀 받아야겠슴다. ...쿠로코 테츠야입니다. 아, 그래요 쿠로콧치. ....쿠로콧치요....?
뭐 눈치껏 그쪽 부르는 건 알 수 있지 않아요? 나 원래 인정하는 사람들 그렇게 부름다. 결혼 전제로 연애하는 프로그램 나갈 사이인데 오히려 이렇게 안 부르는 게 이상하죠. 저는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편한대로. 쿠로콧치 연기 잘 합니까? ...아뇨
그럼 굳이 지어낼 생각말고 평소 하는 것처럼 해요. 행동도 마찬가지고요. 표정 변화가 두드러지는 건 아니니 평소대로 생활하되 내가 이끄는대로 맞춰줘요. 알겠습니다, 키세 군. 원래 친해도 존댓말 씀까? 네, 이게 편해서요. 좋아요. 그리고 이거 받아요
이게 뭔가요? 보면 몰라요? 블랙 카드잖아요. ...카드인 건 압니다만 왜.... 설마 계속 일하려고요? 무언의 긍정. 아카시는 차를 음미하다 이내 키세와 눈을 마주했다. 거봐, 테츠야는 그런 사람이라니까. 알아서 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쪽, 아니 쿠로콧치가 가능한 남에게 신세지고 싶어하는 건 알겠슴다. 근데 쿠로콧치가 지금처럼,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지낸다면 사람들이 의심함다. ....아. 나 키세 료타예요. 1회 출연으로 억 대를 버는 남자죠. 그런 내 애인이 허드렛일로
생활한다던지 거친 손이 방송에 나가면 우리 관계를 의심하거나 내 인성을 의심하지 않겠어요? ...그렇네요.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저 카드 한도도 없고 쿠로콧치가 지중해 섬을 산다고 해도 문제없으니까 뭐 살지 말지 고민할 생각도 말아요. 나 키세 료예요
두 번이나 강조하니까 잊지 마요. 쿠로콧치가 살까 말까 고민하는 그 금액 이상을 나는 그 시간동안 버니까. ...알겠습니다. ......아냐, 못믿겠어. 내 카드 신주단지 모시듯 할 거 같아요. 아카싯치, 공증인 좀 해줘요. 아아, 어떤 거?
쿠로콧치,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할 검다. 하루에 일단 10만엔 정도는 긁어줘요, 쿠로콧치. Σㅍㅁㅍ ...아아. 알았어, 료타. 아카시의 눈매가 버들가지 마냥 휘었다 다시 돌아왔다. 그때의 키세 료타는 알지 못했다. 그 말이 유명한 프로포즈
클리셰였음을. 그리고 미래에 '관계를 유지할 생각 금지' 라는 조항을 넣은 과거의 자신을 매우 때리고 싶어질 거라는 것과 쿠로코에게 '키세 료타' 라고 적힌 블랙카드를 주며 언제까지 물 안 묻히게 하겠다고 말 한 게 신의 한수가 된다는 사실도.
거....촬영하며 찍을 내용은 여러분 머릿속에 스쳐가는 그 내용 맞고요...키세 나중에 계약 종료일 되서 자기가 더 안달복달하다가 물 안 묻히게 해준댔슴다!! 그냥 아무것도 아닌 사이의 쿠로콧치에게 돈 쓰게 할래요? 아님 배우자에게 돈 쓰는 키세 료
되게 할 거예요? 하고 이상한 논리로 쿠로코랑 결혼해서 해피 엔딩 될 거랍니다...아갓치랑 맨날 둥기둥기 놀아도 줄 거고 결혼 얘기 하러 갔는데 아카싯치가 장인 어른 같슴다ㅠ0ㅠ 안절부절하는 키세도 있겠죠....
하하
아니네 망충ㅠ 하나 빼먹었어. 키세 계약서에 촬영하는 날 아니면 연락하지도 말고 만나지도 말자고 썼는데 그거 나중에 이불킥한다. 쿠로코 강제 철벽. ㅍ.ㅍ 키세 군이 촬영 없는 날엔... 아!!! 잊어버려요 쫌!!!!! 분명 없는 촬영도 만들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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