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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태어날 적에 누구도 울어주지 않았지만 세상 그 무엇도 하찮게 여기는 두 드래곤이 그를 위해 울어주었단다. 이것은 한 인간 아이를 주운 드래곤들과 그 아이의 이야기이다.
대륙에는 여러 드래곤이 있었지만 개중 군계일학인 드래곤을 뽑으라고 한다면 딱 두 드래곤이 뽑힐 것이다. 일족 특징인 불과도 같은 성정의 완벽한 표본 레드 드래곤 아카시 세이쥬로. 느긋하고 여유로운 골드 드래곤의 특징과 딴판인 내쉬 골드 주니어. 대부분의 드래곤이 그렇듯, 이 둘 역시 인간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아카시 세이쥬로가 인간 아이를 주워오기 전까지 말이다.
01. 아기를 주워버렸어.
“내쉬, 문 열어.”
“너랑 나랑 같은 급이면서 명령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네가 열고 들어와.”
“손을 사용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까 브레스로 문 녹이기 전에 여는 게 좋을 걸.”
“……네 놈이랑 사는 게 아니었는데.”
앞서 말했지만 골드 드래곤 내쉬 골드 주니어와 레드 드래곤 아카시 세이쥬로는 누가 더 뛰어나다고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용들의 특성 상 라이벌 의식을 갖고, 치고 박고 싸워야 할 그 둘이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해츨링 시절부터 특이하게도 두 사람, 아니 두 용 모두 그다지 가장 ‘위대한 드래곤’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저 타고난 능력이 뛰어난 탓에 자연스레 위로 올라선 것 뿐이다. 드래곤 네스트를 정할 시기가 되었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으므로, 한 세대의 가장 뛰어난 드래곤에게 줄 좋은 땅의 소유자를 누구로 할 것인지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몇 년의 토론 끝에 지겨워진 둘이 같이 살겠노라 말한 것이 동거의 시작이었다.
다만 두 용이 이 때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사실이다. 동족 혐오라는 예상치 않은 문제의 발생. 자신의 품위를 위해 난투를 벌이지 않을 뿐 시시콜콜한 문제로도 다투는 일이 잦았다. 밖에서는 누구보다도 우아한 자태의 두 용이, 네스트 안에서는 정반대라는 것을 누가 알았을까. 그래도 조금이라도 보기 좋게 포장하면, 네스트 안의 두 용의 생활은 애증이라 할 수 있겠다.
“잠깐, 그 속에 품고 있는 게 대체 뭐야.”
“…외출하는 사이에 눈이라도 멀어버렸어?”
“그럴 리가 있겠냐. 내가 혹시 헛것을 보았나 싶어서.”
“보시다시피, 인간 아기인데.”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히 대꾸하는 아카시 세이쥬로를 바라보는 내쉬의 표정이 참으로 볼 만 했다. 아카시는 속으로 숫자 3을 세었다. 3, 2, 1. 예상한 대로 내쉬가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야, 너……! 인간 아기를 이곳에 왜 데려와. 미쳤어?! 유희 중에 새끼라도 친 거야?”
“그렇게 격 떨어지는 표현이라니. 하기야 유희 할 때도 용병이나 그런 역할만 했었지.”
“말 다 했냐? 너 같으면 여기서 우아하게 ‘나의 사랑스러운 동거인 아카시여, 품고 있는 그 인간 아이는 혹시 유희 중에 얻은 자네의 핏줄인가?’하고 물어볼 정신일 거 같아?”
“그 정도면 나쁘지 않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저 아이는 뭐야!”
“쉿, 아이가 깨어날지도 모르니까.”
긴 손가락을 뻗어 조심스레 제스처를 취하고 아카시는 살짝 자세를 바꾸어 아이를 안았다. 깨어날까 말까 칭얼거리던 아이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아, 한 가지 정정할 게 있는데.”
“…한 가지만? 저 존재가 여기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내 핏줄은 아니야.”
“……?”
“돌아오는 길에 숲에서 주웠지.”
그러니까 버려진 인간 아이를 주워 왔다는 이야기다. 아카시 세이쥬로와는 혈연도 없고, 유희 중 인연도 아닌. 이 곳이 아카시 세이쥬로의 오롯한 네스트라면 내쉬는 그가 아이를 주워와 키우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겠지만, 공교롭게도 이 곳은 두 용의 보금자리였다. 특별히 구역을 세세히 나누진 않았지만 영역의 반은 내쉬의 소유였다.
……정체 모를 인간 아이가 이 곳에 살지 말지 정하는 권한의 반 역시.
퍽 이상한 일이었다. 인간에 큰 관심 없는 두 용은 유희 생활 중 어떤 인연이 생겨도 큰 애착을 갖지 않았다.
지나치게 심심한 나날을 견디지 못해 아주, 아주 가끔 유희를 가는 내쉬와 다르게 아카시는 꽤 꾸준히 인간 세상에 나갔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토록 노력하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도, 용들이 보기엔 찰나의 생일지언정 권력을 지켜보려 애쓰는 모습도 재밌었던 모양이다. 인간에 관심이 없다 못해, 미물인 인간의 모습을 흉내내야 하는 것조차 질색인 내쉬는 이해하기 어려운 취미였다. 그렇지만 비교적 인간에게 호의적, 이라고 할지 좀 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카시도 유희 생활 중 얻은 인연들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는데.
“……너 몇 해 전에 갓난 아기를 홀로 두고 유희 생활을 끝냈으면서, 무슨 변덕이냐.”
“변덕이라기보다는,”
진지한 두 눈동자를 마주한 내쉬가 숨을 삼켰다. 뭐야, 실은 사연이 있었던 건가.
“테츠야가 너무 귀여웠어.”
“야, 이 새끼야!!!!!!”
너 갓 태어난 니 자식은 버려놓고 생판 남을, 귀엽다는 이유로 데려와!?
참다 못한 내쉬의 일갈에 아이가 – 어느 샌가 테츠야라고 이름을 받은 – 깨어나 버렸다. 시끄러운 울음 소리가 들리겠지, 생각하고 이골이 난 표정을 지은 내쉬의 생각과는 달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볼살이 오동통한 아기의 칭얼거림에 아카시가 빙긋 웃으며 내려 놓자, 아기는 열심히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신경 쓰지 말자. 내쉬는 애써 화를 누르며 다시 아카시에게 말했다.
“여기가 너 혼자 살면 네가 아기를 키워도, 지렁이를 키워도 신경을 안 쓰는데. 잊고 있나 본데, 너 나랑 같이 살고 있다.”
“물론, 아주 잘 알고 있지.”
“내 동의도 없이 저걸 키우겠다고?”
“저게 아니라, 테츠야라니까.”
“내가 알 바냐! 당장 버리거나 다른 인간한테 떠넘겨.”
“그렇지만 테츠야는 귀여워, 내쉬.”
“…….”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질 않으니 이길 자신이 없다.
참자. 네스트를 망가뜨릴 순 없어.
마구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는 내쉬의 손아귀에서 무언가 쑥 사라졌다. 그는 방금까지 즐거운 기분으로 금은보화를 정리하고 있었으므로 내쉬의 수집품 중 하나임은 틀림없었다.
내쉬의 손에서 물건을 강탈한 것은 방금까지 아카시 품에 안겨 있었던 아기였다. 그는 아카시와의 의미 없는 말싸움과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으로 인한 짜증으로 폭발하려 했다.
……테츠야가 자그마한 손으로 그의 검지 손가락을 잡고 방긋 웃기 전에는.
“…….”
“어때, 귀엽지?”
과연, 냉철한 아카시가 주워와 버릴 만하군.
내쉬는 이 말을 무심코 내뱉으려다, 방금까지의 입장을 생각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지만 아카시는 이미 눈치챈 듯, 빙그레 웃었다.
“키워도 되는 거 맞지?”
……귀여움에 함락당해 순간 얼어버린 내쉬가 거절할 방법은 없었다.
분명 썰북이었는데 본격적으로 책이 되고 있는 적흑골 육아일기....(흐려짐)
에피소드처럼 여러 소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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