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늘의 내쉬흑. 전부터 썰 소재 낙점했지만 아직도 결판 안나서 걍 생각나는대루 씁니다. 고려 때 공녀랑 당시 이민족..이랄지 침략하던 애들 생각해주세욤. 침략자 내쉬x공녀 쿠로코. 아버지가 기황후처럼 쿨코가 되길 바라는 탐욕스러운 사람이어도, 쿨코를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공물로 보내게 된 거든 암튼 집안의 막내 쿠로코는 먼 길을 떠나게 되었음. 그 길을 떠나 살아돌아온 이는 거의 없었기에 쿠로코도 사실상 마지막이 될 가족의 얼굴을 보고 갔겠지. 같이 가는 사람들 속에는 앳된 소녀부터 원숙한



사람까지 참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고위 직책 중 특이한 것, 그러니까 남색을 즐기는 이도 있다는 얘기에 쿠로코도 보내지게 된 거고. 간혹 단단히 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빛나는 눈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 언어도 풍습도 다른 곳에 끌려



간다는 절망과 슬픔에 빠져 있었음. 공물들이 보내질때는 나름 호위도 붙여 보내곤 하지만 보낸 것의 절반 가까이 이민족 도적에게 털린다는 것을, 쿠로코는 막내를 아끼는 형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막내가 간다는 걸 알게 되었을때



아주 오래 전부터 왕실을 위해 일해온 우리에게 이럴수는 없다며 비통해하던 작은 형과 어떻게든 살아만 준다면 반드시 구해주겠노라 눈물을 흘리던 큰 형을 생각해서라도 쿠로코는 살아남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를 닮아 색이 특이하고 결이 고와 부러움을 사던



머리칼을 잘라 마련한 귀금속은 품 속 어딘가에 잘 갈무리해두었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걸로 목숨을 부지하려고.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절반 정도 다다렀을 무렵, 도적떼의 습격이 있었다. 가장 많은 공물을 보낼 때라 호위도 그럴싸하게 붙여줬는데



그들에 비하면 거친 파도 앞의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윤기가 흐르는 크고 강인한 검은 말들의 투레질은 천둥과 같았고 그런 말들을 평생 길들여온 이민족들의 팔뚝은 웬만한 사람의 허리 굵기와 같았음. 순식간에 제압이 끝나고 모두 끌려가게 되었을 때 쿠로코는



특유의 옅은 존재감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누군가 허리를 휙 낚아채더니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텐데, 안타깝군. 이 자는 내가 특별 관리한다." 하더니 제 허리춤의 끈으로 쿠로코를 등에 묶었음.



쿠로코가 형들에게 조금씩 배웠던 이국의 언어로 더듬더듬 "제가 당신을 해칠지도 모르는데 제 손과 발은 자유롭게 두어도 괜찮습니까." 물었고 금발과 벽안의 사내는 대답없이 호탕하게 웃었다. 얼굴이 닿아 있는 등근육이 한참을 들썩이고서야 도적일행이



말머리를 멈추었다. 천혜의 요새에 숨겨진 마을이었다. 마을에 다다르자 여인들이 물이며 과일이며 들고 맞아주었다. 끌려온 여인의 언니!! 하고 애타게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오가는 소리에 쿠로코는 이곳의 여인들이 고국을 먼저 떠난 공녀들임을 알았다.



공녀로 보내지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황실 측근의 첩이 되어 잠깐 호사를 누리다 싫증이 나면 비참한 꼴이 된다고 했다. 운이 좋으면 황실의 궁녀가 되었지만 궁에도 탐욕스러운 자는 있기 마련이었고. 떠나온 순간부터 돌아갈 곳은 없어졌고 설령 아무 일없이



돌아간들 반길 리 없었다. 그렇다곤 해도 희망이란 쉬이 꺼지지 않아 악착같이 도망치던 이들을 이민족 도적떼가 받아준 것이었다. 이민족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황실이 배척하는 사람들이었다. 황실을 싫어하는 이들이 도망친 이들을 따스히 대해준 것은



당연한 일이였고, 어차피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여인들은 이들과 하나둘 결혼을 했다. 평생을 견제받으며 살던 이들에게 가족이라는 인연은 드물고도 소중했고 연을 맺은 한 사람만을 마음에 담는다 했다. 드물게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이들은 약간의 재물과



함께 황실 어딘가에 슬쩍 보내주고. 이제는 제법 공녀들을 처로 맞이한 이가 많아졌고 처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평소엔 나서지 않는 우두머리가 나섰다고 했다. 여태 수많은 이가 끌려 왔으니 이번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들어주려고 이미 한 번 끌려간 사람이 있는



집에서 또 끌려올 것이라는 그네들의 추측은 멋지게 들어맞았다. 이번에는 그 누구도 황실로 보내달라 요구하지 않았다. 신분 상승을 해서 반드시 잡혀간 언니를 찾겠다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신부를 맞은 이도 생겼고, 그저 함께 살다 좋은 사람이 생기면



연을 이어줄테니 앞서 가족을 꾸려 사는 자매의 집에 가게 된 이도 있었다. 축제 분위기에 둘러 쌓인 마을에서 쿠로코만은 조용히 모닥불을 쬐었다. 눈 앞에 쓰윽 내밀어지는 사과가 아니었다면 밤의 여신이 친 장막이 거둬질 때까지 주욱 그랬을 터였다.



집에 돌아가고 싶은가? 누구보다도 이질적인 생김새의 금발 우두머리 사내였다. 여인들과 다르게 사내인 쿠로코라면 돌아간다 한들 비난받지 않겠냐는 표현도 담겨 있었다. 쿠로코는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손에 들린 사과를 받아 만지작거렸다. 고국의 것과는



퍽 다른 생김새였다. 기후도 토지도 모두 다르니 당연했다. 저와는 다른 사내의 팔뚝이며 머리칼도 한 번 흘깃 하고는 글쎄요, 돌아간다고 해도 혼자 살아왔다는 비난을 듣는다던지 또 보내질지 모르는 거 아닐까요. 대꾸했다. 한 번 저를, 이 사람들을



버린 왕실이 또 버리는 것을 어려워할 리 없었다. 돌아가서 다시 공물이 되어 오거나 더럽혀진 몸이라는 비난이나 혼자 살아왔다는 비난으로 가족에게 누를 끼칠 게 분명했다. 제 형들은 사지에서 살아온 막내를 다시 보내게 둘 리 없으니 여태껏 그리 충성한



왕실에게 미움받는 선택이라도 기꺼이 할 터. 그렇다면 가족의 명예와 완전한 행복, 무엇 하나 남는 것이 없지 않은가. 고국에서 버려진 이들에게 새로운 터전이 생긴 것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여인도 아닌 자신은 어떻게 해야할지 퍽 막막할 따름이었다.



적어도 이 낯선 곳의 황제가 공물을 요구하지 않게 되거나 쿠로코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가족을 만나고 싶다 청할 때나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기실 쿠로코에게 남은 선택지는 이곳에 머무르는 것 뿐이었다. 다만



누군가의 부인이 될 수도, 그렇다고 힘을 잘 쓸 수 있는 장정인 것도 아니어서 선뜻 자신을 받아달라 하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금발의 사내는 쿠로코가 고민하는 동안 묵묵히 기다렸다. 서늘한 밤공기가 스치자 걸치고 있던 옷을 툭툭 털어내더니 쿠로코의 어깨



위에 올렸다. 밤공기가 쌀쌀해, 이 곳은. 고뿔 걸리기 쉽지. 집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거라면 이곳에 있지? 하지만 저는 도움도 되지 못하고.... 우리 누이를 닮았다. 벌떡 일어선 사내의 너른 등에 은하수가 반으로 나뉘었다. 집에 갈수 없는



제 처지같아보여서 일순 사내의 말이 와닿지 않았다. 해주지 못한게 많아, 누이에겐. 누이가 살아있었다면 분명 널 받아줬겠지. 내 천막은 가장 큰 느티나무 옆이다. 첨언은 없었지만, 쿠로코가 생각할 시간을 주려는 것이라는 건 훤히 보였다. 사과는



꽤 단단했지만 혀를 부드럽게 감싸는 단맛이 났다. 꼭 제 어깨에 옷을 걸쳐준 사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쿠로코는 사내의 천막으로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돌아갈 때를 기다리며 살되 언젠가 떠날 것이라 생각하진 말자고. 이곳에 하나라도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쿠로코가 언제 들어올지 몰라서인지 기름이 가득한 호롱불이 그를 맞았다. 넓은 천막 구석에 사내는 자고 있었다. 원래는 그의 것이었을 보드라운 털담요도 폭신한 베개도 침상 채로 쿠로코를 맞았다. 이것도 누이 때문일까.



섬세라고는 모를 거라 생각한 이민족의 우두머리와 동침을, 그것도 되는대로 배려받으며 잔다는 것은 퍽 웃음이 나는 일이었다. 호롱불을 불어 끄고 찾아온 어둠 속에 쿠로코는 깊이 잠들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사내의 이름도 알지 못했구나 생각하면서.



눈을 떴을 때 제 몸을 감싸는 보드라운 침구와 낯선 천장에 놀랐던 것도 잠시, 쿠로코는 이내 이민족 마을에 살기로 했던 걸 떠올렸다. 하루 사이 많은 일이 있었지 싶었다. 그러고보니 어젠 도망쳐서 어떻게 하려 했을까. 별다른 계책도 없이 무모했었다.



사내는 부지런해서 탁자 위에 어젠 없던 꽃병을 놓아두었다. 꽃송이는 작지만 향은 상당히 좋았다. 천을 헤치고 나가려는 차에 들어오려던 사내와 마주쳤다. 손에 한아름 과일을 품은 채였다. 익숙한 고국의 것도, 낯선 이국의 것도 골고루 있었다.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은 아침이었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어쩐지 쑥스러워서 과일의 이름을 묻다가 꽃의 이름을 묻다가 당신을 뭐라고 부릅니까? 물었다. 사내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이내 너털웃음을 쳤다. 종이 위엔 낯선 구불구불한 글씨가 쓰여졌다.



내쉬 골드 주니어. 내쉬라고 부르면 돼. 저는 쿠로코 테츠야라고 합니다. 이국의 언어는 그동안 쿠로코가 보지 못한 새로운 글자였다. 많이 먼 곳에서 왔구나, 그저 그것만이 확실했다. 도움이 될 것이 있을까 싶었던 쿠로코는 의외의 소질을 발견했는데



형들이 무예 연마를 하다 다칠 때마다 도왔던 덕에 부상 처치를 그럴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달갑지는 않은 능력이었다. 누군가 다쳐야 하는 거니까. 내쉬는 우두머리지만 지휘만 내리지 않고 직접 선봉에 서기도 하고 힘든 일에 주로 나서다 보니



자잘한 흉터부터 온몸에 참 골고루 흔적이 있었다. 작은 상처들은 아예 치료하지도 않았던 모양이었다. 쿠로코는 그게 퍽 마음에 걸렸다. 아예 남도 아니고 지금은 한 천막을 쓰는 사이가 아닌가. 이곳의 문화가 천막을 공유한다=가족인 만큼 더욱. 그래서



내쉬가 괜찮다고 할 때도 꼬박꼬박 약을 바르고. 내쉬는 크게 다쳐도 도통 티를 안 내서 한 번은 크게 검상을 입고 천막에 돌아와 기절해서 열이 펄펄 끓기도 하고 또 한 번은 천막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는 순간 피에 흠뻑 젖었는데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마다 쿠로코가 내쉬를 간호했다.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내쉬는 침구를 그러쥐었을 뿐 소리를 내지 않았다. 씻을 수 없어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줄 때도, 생채기가 가득한 몸은 자꾸만 쿠로코 뇌리에 어슬렁거렸다. 크게 다쳤을 때 한 번씩 기절하다 눈뜨면



내쉬는 쿠로코의 타는 속내도 모르는지 이래서 다들 결혼을 하나봐, 테츠야. 퓽ㅅ퓽 지금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 악 아파!! 나 지금 환자야! ㅍ.ㅍ 매를 번 건 내쉬 군입니다. 괜히 얻어맞는 일도 있었다. 내쉬가 뭘 꾸미고 있는진 알 순 없었다.



고국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여인들은 참 행복해보였다. 하기사 썩 밝은 미래가 기다리던 건 아니었으니까. 쿠로코의 나이도 고국이라면 슬슬 정혼자가 생기고 이르면 이미 결혼을 했을 때였다. 떨어지는 꽃잎비에 꺄르르 웃는 연인들을 보며 가만히 상상해보았지만



도무지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 눈앞에 또 불쑥 꽃가지가 보였다. 내쉬가 씩 웃으며 꽃나무 가지를 들고 있었다. 뭡니까? 예뻐서, 예뻐서 주는 거야. 꽃이요? 아니, 테츠야. 이제는 너무나도 가까워져서인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인 내쉬는 이내 무릎을



꿇고 연가를 부르며 꽃을 내밀었다. 꽃비 내리는 나무 아래에서의 이런 모습이라니, 꼭 정말 연인스럽지 않은가. 아까는 그렇게도 상상 안되던 게 누군가 오해하면 어쩌지 걱정될만큼 의식되다니 별일이었다. 꽃이 시들기 전에 화병에 꽂아야겠습니다.



내쉬의 손에서 꽃가지를 휘익 낚아채고 뒤돌아섰다. 귀가 빨갰다. 뒤에선 내쉬의 웃음소리만 크게 울렸다. 태앙과 테츠야 귀, 뭐가 더 붉은 것 같아? 질문에 답하지 않고 쿠로코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쉬는 저를 누이라고 생각하며 놀린 것 뿐일 건데.



또 놀림받아서 조금 화나서 귀가 빨개진 것 뿐이라 되뇌였지만, 입꼬리가 올라간 이유는 무엇이라 하겠는가. 몸 정을 조심하라며 깔깔 웃던 마을 아낙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정이 든 거겠지. 정들어서 그런 것 뿐이겠지. 말하면 정말로



겉잡을 수 없게 커져 버릴까 모른 척 했지만. 어느새 은애하게 된 걸까. 마을 아낙들이 보기엔 빼도박도 못한 연인의 모습이었는데 쿠로코만 몰랐다. 내쉬군은 혼례를 올리지 않나요? ...올렸으면 좋겠어? 그냥 어떤 분이 곁에 있을까 궁금해서요.



나는, 난 그냥 테츠야랑 있고 싶은데. 그 나이면 이미 누이는 시집갔어요, 내쉬 군. 누이 얘기가 왜 나와? 제가 누이랑 닮았다면서요. ......테츠야. 햇빛이 눈부신 건지 뭔지. 내쉬가 빙긋 웃는 모습이 유독 빛나는 것 같았다. 웃음기 어린



목소리는 깃털로 가슴께를 간질이는 것도 같고. 나는 테츠야를 연모한다는 얘길 한 건데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거야 모르는 거야? 네? 무엇 때문에 테츠야에게만 치료를 받는다고 생각해. 어...어...? 혼례는 나중에. 나중에 꼭. 보드라운 입맞춤.



맨 살결을 자주 보기도 하고 만지기는 했다. 내쉬가 자주 다쳐오니까. 언제부턴가는 작은 상처도 제가 먼저 내밀었지. 아낙들이 말하는 몸 정이 이런 건 아니었겠지만 정이 들긴 들었던 모양이다. 부드럽게 다가온 입술과 체향에도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교제하자고 표현만 안 했다 뿐이지, 늘 주고 받던 게 연인들의 것과 다름 없었기에 큰 변화는 없었다. 그저 간질이는 키스와 마을 사람들의 답답함이 해소되었다는 차이 정도일까. 내쉬는 도통 사랑에 관심없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는 말이 어찌나 돌던지.



쿠로코의 머리가 제법 길었다. 교제한 뒤로 둘다 더 신경썼지만 내쉬의 흉터도 늘었고. 내쉬는 여전히 뭔가를 진행 중이었지만 알려주진 않았다. 마을에 있을 때 내쉬는 쿠로코의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는 걸 좋아했다. 평화로운 시간이 계속될 줄 알았다.




사랑을 쟁취했으니 이제 꽃길만 걸을 줄 알았는데......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