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샘플

[적흑골] 드래곤 육아일기 샘플2

에딘MOON 2018. 2. 27. 10:30

02. 테츠야의 파파는 둘.



깔끔, 단정, 모오-던. 아카시와 내쉬의 보금자리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 비슷비슷한 단어 같지만 아무튼. 그러나 아카시가 어느 날 숲에서 버려진 테츠야를 주워 온 이후 가장 빠르게 바뀌었다. 제일 먼저 나오는 아늑한 공간은 아기를 위한 물품, 식재료 따위가 가득했다. 그 공간만 똑 떼어놓고 보여준다면 세간 사람들은 모두 아기를 사랑하는 부모일 거라며 칭송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테츠야는 천장에 매달린 모빌을 보며 꺄르르 웃고 있었다.




“쟨 저게 각종 희귀한 보석들인 거 알까 몰라.”


“반짝이는 것 하면 역시 보석이니까 어쩔 수 없지.”


“태어나서부터 계속 이래서, 나중에 눈이 너무 높아지면 곤란한데.”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 내쉬의 입가는 미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테츠야의 촉감 공부를 위한답시고 내쉬는 천족들 깃털로 감싼 보드라운 솜뭉치, 매끄럽기가 손에서 흘러 내리는 물줄기 같다는 머메이드의 머리칼 등을 가져다 두었다. 굳이 따지자면 아카시가 엄선해 고른 보석 모빌들보다 내쉬가 가져다 두는 것들이 더욱 귀한 것들이지만 아카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요한 얘기가 있는데.”


“뭔데?”



그러고 보니 내쉬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지, 참. 아카시는 우아한 자태로 찻잔을 들며 물었다.



“드래곤들이야 무성이니 상관없지만, 인간은 아니잖아?”


“그렇지. 그런데 그게 왜?”


“그럼 우리 둘 중 하나는 엄마가 되겠지. 엄마는 좀 그런가? 마망? 난 파파가 좋더라고.”



둘 중 하나가 될 것처럼 말했지만 내쉬의 말은 마치 아카시 네가 그 역할이니까 원하는 호칭을 정해, 라고 들렸다. 편안한 자세로 차를 홀짝이던 아카시의 손에 힘줄이 마구 돋아나기 시작했다.




“잠깐만, 누가 파파냐. 설마 나보고 아내 역 하란 건 아니지?”


“우웩. 너 같은 아내가 있으면 결혼 첫 날부터 독살당할 거야.”


“너같은 배우자도 만만치 않게 기분 나빠.”



드래곤이야 얼마든지 원하는 성별로 변할 수 있어서 사실 지금의 성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둘 중 한 사람이 인간 여성의 형태로 함께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건, 두 사람 아니 두 용이 합의를 통해 - 주로 간단한 게임의 승패로 결정했지만 - 정했을 때 일이다.




“네 뉘앙스가 기분 나빠.” 네가 말을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는 아카시의 구박이었다.


“네 놈이 덩치가 작으니까 그렇지.”


“죽고 싶다는 거지, 내쉬 골드 주니어. 살다 살다 너무 지겨웠나 죽여달라는 말을 신박하게 하는 구나.”




아카시 세이쥬로는 불같은 성정의 레드 드래곤 일족이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보통의 레드 드래곤들은 화도 잘 내고 그만큼 잘 풀렸지만 - 대신 어딘가의 숲이 불덩이가 된다거나 그런 일은 생긴다 - 아카시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일족 특징의 완벽한 표본이라고 하는 이유는 한 번 진노한 아카시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기 때문이다. 숯불이 은은히 오래 가는 것처럼 그의 분노는 오래 갔고, 또한 화산 폭발과도 같은 무서운 위력이었다.




싸늘해진 아카시의 눈은 오늘 너를 조각내어 버리겠다는 식이라, 내쉬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한 번도 아카시의 덩치가 작은 것으로 놀린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그게 그의 역린이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네스트를 비교적 원상태로 유지하며 그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까. 아무도 없는 바다 위에서 몇 대 얻어 맞아야 하나? 


그러나 그의 고민은 몇 초도 가지 않아 해결되었다.


때마침 잠에서 깨어난 테츠야가 열심히 둘을 찾아 기어오더니 방긋 웃으며 손가락질을 했기 때문이었다.




“파-”


“……파?”



테츠야는 검지 손가락으로 아카시를 가리키며 한 번, 내쉬를 가리키며 한 번, 총 두 번을 말했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나이지만 아카시는 활짝 웃으며 무언가 무시무시한 결과를 불렀을 마력 덩어리를 없앴다.




“역시 우리 테츠야. 둘 다 파파라고 하겠다는 거지?”




아기인 만큼 테츠야에게 응이나 네, 따위의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배시시 웃으며 아카시의 볼을 만지작거리는 테츠야의 행동이 긍정의 표현이라는 듯, 아카시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 칭찬하기 시작했다.



“테츠야는 참 똑똑하고 남다르지. 그래, 인간 세계의 상식은 이해할 수가 없어. 사랑하면 나이 차이도, 국경도 없다면서 왜 성별을 나누는 걸까.”



‘어찌 되었든 폭발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마도 걘 그냥 물 속에서 숨 쉬는 것처럼 입을 오물대다 아무 소리 낸 거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내쉬 골드 주니어도 잘 알았다.





훗날, 파파들 사이에서 자란 테츠야는 동성의 사랑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자랐고 다소 오해는 있었지만, 두 드래곤이 테츠야에게 사랑을 표현해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 때 내쉬 골드 주니어는 이 날의 자신을 떠올려 ‘행복의 씨앗을 밟아 죽일 뻔한 멍청이’라고 표현한다.





드래곤 육아일기 샘플2입니다. 이제 인포 올리고 마감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