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샘플

녹흑 트윈지 샘플2

에딘MOON 2018. 1. 25. 23:03

01. 자각


"그래, 일단...궁금한 게 많지만 제일 먼저 물어야 할 게 있슴다. 대체 언제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미도리맛치, 쿠로콧치 볼 때마다 굉장히 못마땅한 표정이었잖아요. 키세의 질문에 미도리마는 잠시 손가락 끝을 매만지더니 - 이제 그 손가락에는 붕대가 감겨 있지 않았지만 습관은 무서웠다. - 무어라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여러모로 짐승같은 아오미네만이 알아듣고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와, 나 키세 드라마에서 하는 대사 듣고 재수없다고 욕한 적 많긴 한데 너한테 그런 소리 들을 줄 몰랐다."

 

"너무함다!"

 

"그래서 뭐라고 한 거구-"

 

"쿠로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아니라, 내가 인정한 사람이 고작 그런 학교에 간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우승했는 걸요."

 

"아아. 하지만 역시 너와 고등학교도 같은 곳에서 다녔으면 좋았을 거라는 거야."

 

 

저기, 우리도 같이 있는데 딴 세상에 빠져 들지 말아주세요. 키세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쿠로코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언제 반했는지 말해보도록 할까요, 미도리마 군. 따스한 웃음을 지은 쿠로코의 입에서 '세이린이 우승을 차지했던 그 겨울' 이라는 말이 나옴과 동시에 미도리마의 입에서 '쿠로코가 체육관에서 토하던, 테이코 합숙 시절' 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오오. 미도리마가 먼저였냐 시끄럽게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함성과 왜 하필 토하던 때입니까, 툴툴대는 쿠로코의 목소리. 나는 둘이 같은 순간 팟- 하고 사랑을 느낀 줄 알았는데요. 야, 이게 지금 무슨 드라마인 줄 알아? 현실이 더 드라마같다는 거 모름까? 역시 아오미넷치, 바보. 뭐? 이 바보가!

 

 

 

"나부터 먼저 이야기하겠다는 거야." 시끄러운 와중에 미도리마가 말했다.

 

벌써 아름다운 추억으로 빛나고 있는 테이코 시절. 제각기 일당백의 능력을 자랑하는 기적의 세대도 능력이 개화하기 전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맞물리는 톱니바퀴의 부품과도 같았다. 그러니까 그래도 나름 팀워크라는 것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언제부턴가 삐걱대더니 결국은 따로 움직이게 되었지. 미도리마는 어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위태한 모습으로 평상시 모습을 유지하던 아카시가, 무라사키바라의 반항에 부서졌던 일.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신타로라고 자신을 부르는 아카시, 무엇인가 많은 게 달라졌다는 걸 느꼈어도 미도리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그저 늘 그랬듯 묵묵히 연습하고 손 끝의 붕대들을 가지런히 정리할 뿐이었다.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도리마가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일은 없지.

 

...정말 없을까? 진짜로?

 

균열이 생겼던 순간부터 단 한 번도 그들을 놓지 않았던 쿠로코 테츠야는 어느 날을 기점으로 퇴부서를 내고 나오지 않았다. 쿠로코가 없다고 해서 다른 멤버들 누구도 곤란스러워 하진 않았다. 쿠로코와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아오미네는, 가끔 흔들리는 눈이긴 했어도 끝끝내 그의 반에 찾아가지 않았다. 그저 손톱 자국이 새겨질 정도로 꾹 쥔 주먹만을, 미도리마는 보았다. 가장 친했던 아오미네와 쿠로코의 능력을 발견한 아카시도 그를 찾지 않는데 미도리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더더욱 없다고 생각했다.

 

 

 

".....잠깐만, 그 때 아오미넷치도 쿠로콧치 한 번도 안 찾아갔어요?"

 

"여기 있는 대부분이 그랬을 걸."

 

"...난 문자 계속 했는데요."

 

"그래서?"

 

"쿠로콧치가 대답 안 해줬죠."

 

"그거 평소랑 다른 거 없지 않아?"

 

"너무해!"

 

그래서 일부러 찾지 않았는데 운명처럼 길 가다 마주치고 그런 거예요? 키세 넌, 드라마 좀 그만 보라니까. 기대에 눈을 반짝이며 묻는 키세와 그를 핍박하는 아오미네. 미도리마는 입꼬리를 미묘하게 올렸다가 이내 대꾸했다.

 

 

 

"일부러 찾아갔다는 것이야."

 

"엥?"

 

 

처음 말했던 것처럼 미도리마는 결코 쿠로코에게 돌아오라고 구슬릴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는 더이상 연습을 하러 오지 않는 아오미네와 쿠로코를 사이에 두고 1대1을 신청하던 키세가 없는 조용한 체육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미도리마가 구석에 앉아 테이핑을 다시 하거나, 수분 보충을 할 즈음이면 슬그머니 다가와 놀래키던 쿠로코도 없었다. 공 튀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체육관. 변하지 않은 건 자신 뿐일까. 어쩌면 쿠로코는 기적의 세대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었을지도 몰랐다. 무라사키바라와 편의점에서 새로운 과자에 도전한다거나 모모이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을 열심히 씹어 삼키고는 꿋꿋하게 응원하던 모습. 칼같이 엄했던 아카시가 유난히 약했던 것도 무라사키바라와 쿠로코였지. 키세와 아오미네가 쿠로코를 두고 1대1하며 다투기도 했군. 돌이켜 볼수록 더욱 그랬다.

 

내가 그리운 게 단지 전의 모습이었는지, 쿠로코의 존재인지 모르겠군.

 

 

"지금 물어보면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는 거야. 나는 쿠로코가 그리웠다는 것이다."

 

"우와, 미도리맛치. 그런 말도 할 줄 알았어요?"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잊고 있냐는 거야."

 

며칠 밤을 고심한 끝에 결론이 났지. 미도리마는 토할 정도로 자신을 한계로 몰아부치며 노력하던 쿠로코가 꽤 마음에 들었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했다. 다른 기적의 세대들에게 없던 무언가가 쿠로코에겐 있었다. 절박함과 희망, 즐거움. 쿠로코에겐 이기기만 하면 상관없다는 마음이 생길 자리가 애초에 없었다. 땀방울을 흘린 만큼, 반드시 그 노력한 대가가 돌아올 거라는 믿음.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그것은 미도리마가 사랑하는, 진인사대천명과도 이어져 있었다. 언젠가는 당신들에게, 패배를 선보여 농구는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겠습니다. 곧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꺼내던 쿠로코의 한 마디. 그래서일까, 자신도 최선을 다해 상대하고 경기에서 패배한 후 결과에 승복하며 쿠로코의 손을 맞잡았다.

 

 


".....근데 그게, 그러니까 왜 토할 것 같았던 때가 한 눈에 반한 순간이죠? 보통은 널 꺾어주겠슴다! 그렇게 선언한 순간 두근, 하고 느끼는 거 아님까?"

 

"다이키에게 동감이야. 드라마 시청은 당분간 금지하겠어. 마음을 자각한 뒤에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때부터 호감이 생겼다는 뜻이지, 료타."

 

 

묵묵히 듣고 있던 아카시의 한 마디에 미도리마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금 스쳐가듯 떠오르는 쿠로코의 모습을, 그동안은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마음을 부정했었다. 하지만 한 번 인정하니 다음부턴 쿠로코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은 미도리마 자신이 얼마나 세세한 부분까지 쿠로코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 상기하는 시간이었다.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때부터도 묵묵히 홀로 노력하던 쿠로코. 처음 제4체육관에서 그를 발견한 것은 아오미네, 그의 능력을 알아낸 것은 아카시. 하지만 헛구역질을 하던 쿠로코에게 이온음료를 건네던 아오미네는 이제 없고, 잠깐 쉬었다 할지 묻던 아카시도 더이상 쿠로코를 찾지 않는다. 자신은 아카시와도 아오미네와도 다르다. 쿠로코에게 그들과 같은 의미로 소중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마음으로 제 자리를 지키며 노력한 것은 쿠로코와 나. 그것으로는, 쿠로코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을 수 없는 걸까.

 

 

"앗, 잠깐 그럼 그동안 못마땅한 눈길로 본 건....."

 

"그렇군. 쿠로코가 아니라, 그 옆에 있던 우리들이었구나."

 

 

미도리마는 이번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무언 속에 담긴 긍정의 표현을 쉬이 읽어냈다. 하기야 미도리마가 그토록이나 노력하던 쿠로코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게 이상한 일이지. 미도리마가 매번 좀 더 식사를 든든히 하라는 거야, 수분 보충은 꼬박꼬박 하라는 거야, 끝없는 잔소리를 하긴 했지만 그건 분명 걱정의 다른 표현이었다. 어쩌면 아카시가 처음 소개했던 순간 반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거야. 미도리마의 이어진 말에 모두들 미묘한 표정이었다. 미도리맛치, 왠지 오하아사가 말하기를 '운명의 상대는 쌍둥이 자리에 남쪽에서 온 귀인으로 봄에 만난다' 는 것이야, 이렇게 말할 줄 알았는데. 초 단위로 시간을 계획해서 연애하고 그럴 거 같고요. 키세에게 소리내어 동조하는 이는 없었지만 모두 공감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요, 사실 잘 납득은 안 가지만 쿠로콧치가 열심히 노력한 모습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차곡차곡 러브 마일리지가 쌓였다고 쳐요. 쿠로콧치는?"

 

"러브 마일리지라니, 네이밍 센스 구려.....인기 모델이 저래도 되는 거야."

 

"지금 중요한 게 그건 아니잖아요!"

 


제가 반하기 전, 미도리마 군과 만났습니다. 먼저 이 이야기를 해야겠지요. 쿠로코는 빙긋 웃었다.


확실히 미도리마 군에게 반한 건 세이린이 우승컵을 든 이후 일입니다만, 사실 그 전에 미도리마 군이 저희 집을 찾아왔어요.

 

 

아까 미도리맛치가 얘기했던, 일부러 찾아갔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거죠? 키세는 펄펄 끓고 있지만 아무도 손대지 않은 전골에 육수를 붓고 화력을 조절했다. 어쩐지 이번에도 아무도 전골을 먹지 않을 것 같았다.

 

 

 

 

한 시간 반을 쥐어 짜낸 결과가 이렇다니............(참담)

트윈지 20페이지는 나오겠죠......? (흐려짐)

전골에게 미리 명복 빌어주세요.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