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백업

[황흑] 모델 키세×꽃집하는 쿠로코

에딘MOON 2017. 11. 12. 00:45

오랜만에 썰 푼다 흐흑 일시러 죽어 예전에 생각했는데 매일 밤 퇴근하고 뻗어서ㅋㅋㅋㅋ 모델 키세×꽃집하는 쿠로코로 황흑! 키세군,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해도 돼?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오랜 기간 알아온 소품 담당팀장만 아니었다면 가차없이 끊었을텐데



겨우 잠들었던 지난 밤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키세는 조그맣게 툴툴댔다. 키세 료, 현재 남녀노소 불문하고 호감도 1위 남자 모델. 광고든 화보 촬영이든 수억 엔을 기꺼이 지불한다 해도 그의 손에 선택받을 수 없다더라, 는 소문이 자자하다.



신입 모델들이 종종 제 매력을 증가시킬 소품을 가져오거나 알게 모르게 가해지는 연차높은 촬영팀의 압박에 소품 심부름을 하는 일은 있지만, 화려한 수식어의 키세 료는 이미 다 준비된 촬영을 미뤄도 쓴소리 하나 안 듣는 판이다. 그러니 꿈에서도 겪어본 적



없는 심부름인 셈이었다. 알았어요. 어디서 뭘 해요? 고마워~~ 역시 료타 뿐이라니까! 이럴 때만 료타죠? 뭐 많이 급한 거예요? 그건 아니고~ 넉살좋게 웃는 그녀가 얄밉지는 않았다. 대충 휘갈긴 메모를 탁상 위에 올려 두고 키세는 몸을 풀었다.



숙면을 잘 취하지 못하는 예민한 몸이라 다시 잘 수 없기도 했고. 그래도 비싼 돈을 들여 관리받는 덕에 피부는 퍽 고왔다. 피로는 가시지 않았지먀 키세 료타의 기분은 꽤 좋았다. 꽃집에 도착하기 전까진 말이다. 뭐야, 아직 문도 안 열었잖아.....



꽃집들이 줄지어 있는 만큼 서로 부지런히 영업에 나서는 판에, 키세가 찾은 꽃집은 매몰차게 Close 표지판을 건 채였다. 안목이 깐깐한 걸로 탑 자리를 꿰찬 소품 팀장이지만, 그다지 넓어 보이지도 깨끗한 것 같지도 않은 가게 외관은 괜스레 의심가게



만들었다. 에리카 씨, 나이가 들어서 혹시.... 실례되는 생각을 한참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꽃집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제법 매서운 공기에 옷깃을 여미고 투덜댈 즈음, 찻집을 오픈하러 나온 분홍 머리의 여자가 앞에 멈춰 섰다.



어머, 꽃집 손님이시죠? 쿠로코 군, 손님 한참 기다리고 계셨나 봐~ 찻집 안까지 들리겠다 싶은 목소리로 모모이가 -명찰을 보고 알았다- 외쳤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미안해요. 쿠로코 군이 좀 특이하거든요. 대답했는데 안 들린 걸지도 모르지만



아직 오픈 시간도 아니고 추우니 잠시 들어갔다 가세요. 사양할 시간도 없이 키세는 모모이 손에 끌려 들어갔다. 그녀 또래의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며진 안락한 실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악!!!! 뭠까!! 언제부터 있었어요?! 코트를 걸어놓고 뒤를 돌아본 키세의 앞에는 어느새 사람이 있었다. 당신이 쿠로코 테츠야? 네, 그렇습니다. 아니 꽃집은 팽개쳐 두고 티타임이나 즐기고 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쿠로코의 손에는 아직 따뜻하게



보이는 찻잔이 들려 있었다. 미안한데 저 바쁜 사람이거든요. 저도 바쁩니다. 네? 영업시간이 아닌데 부탁받아서 남아있었습니다. 꽃집 영업시간이 언젠데 그래요? 부탁받은 시간은 9시입니다. 담담히 제 할 말만 하고 쏙 들어가는 쿠로코를, 키세는



황망히 바라보았다. 확실히 아직 제 손목시계는 8시 57분.....57분?!?! 뭐야, 3분 정도는 일찍 열어도 되잖아요!! ...여전히 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정확히 9시가 되자 겉옷을 두툼히 챙겨 입은 쿠로코가 먼저 나섰다. 꼭 옷에 파묻힌



모양새였다. 아깐 미처 몰랐지만 꽃집의 표지판만 Close였을 뿐, 불은 켜져 있었던 듯 했다. 누구 부탁으로 오셨어요? 에리카 씨요. 받으러 오신 분 성함은? .....나 몰라요? 굳이 말로 해야돼요? 전 독심술사도 점쟁이도 아닙니다만.



무슨 문제 있냐는 듯 쳐다보는 눈에 키세는 순간 혼란스러웠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제 사진만 보여주면 료따! 말한댔는데. ...키세 료타요. 그래, 안면 인식을 잘 못 할 수도 있지. 이름을 알면 뭐가 다르겠지. 그런 키세의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평소 오던 분이나 들어본 이름이 아니네요. 에리카가 보낸 메일을 보여주는 것보다, 쿠로코가 통화 버튼을 누른 것이 빨랐다. 에리카씨, 오늘 키세 료타라는 사람이 픽업하는 거 맞아요?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만나고 싶은 모델



키세 료타를 이리 푸대접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하다못해 제 누나도 '내 눈엔 그냥 그런데 대단한 동생이라니까~' 말하지 않았던가. 이쯤이면 오기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나 진짜 몰라요? 키세 료타라는 이름인 건 압니다. TV 안 봐요? 네.



....TV도 안보고 뭐하고 살아요? 책읽고 식물돌보고 그러다 보면 잘만 갑니다. 그, 그래도 돌아다니다 보면...! 필요한 곳 외에는 잘 안 나가서요. ... 시끄러우니까 찻집 가서 기다리세요. 시간이 꽤 걸리기도 하고요. 결과는 쫓겨났지만.



아하하, 이해는 돼요. 쿠로코 군은 관심없는 것은 기억 안 하니까요. 역시 들어는 봤는데 기억을 안 하는 거죠?! 달그락 소리와 함께 키세 앞에 찻잔이 놓였다. 이게 뭐예요? 쿠로코 군이 아까 부탁한 차요. 키세 씨 주랬어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키세에게 모모이가 덧붙였다. 그래도 별일이긴 해요. 쿠로코 군, 한참 차 마시면서 기다렸거든요. 9시에 누가 올 거라면서요. 그녀의 손 끝에는 얼마나 우렸는지 이젠 맹물같아 보이는 액체가 가득한 찻주전자가 있었다.



지잉하고 울리는 핸드폰에 키세는 번쩍 눈을 떴다. 차를 한두 잔 마셨던 기억을 끝으로, 어느새 잠든 모양이었다. ....세상에. 핸드폰 화면은 12:00를 띄우고 있었다. 료타, 오늘은 메이크업 엄청 잘 받는데. 무슨 일이래? 그래요?



잠을 잘 자서 그런가. 어머, 어쩐 일로? 잘 못 잔다고 했잖아? 나도 모르겠슴다.... 모모이가 건네준 걸 한가득 싣고 -쿠로코는 먼저 갔다고 했다- 촬영장에 도착한 이후에도 키세는 멍했다. 아무 방해없이 그렇게 푹 자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수면제라도 탔나, 꿈을 꾸고 있나. 속고 있는 기분이었다. 에리카는 그런 키세를 보고 뭔가 의미깊은 웃음을 지었지만 말해주는 건 없었다. 촬영이 끝난 5시, 다시 찾아간 꽃집엔 Close 표지판만이 키세를 반기고 있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이게 말이나 돼요? 무슨 꽃집이 문을 안 열어? 며칠이나 허탕을 쳤었던가. 지나가는 길에 힐끔 바라본 가게는 매번 그놈의 야속한 Close 간판이 걸려 있었더랬다. 매니저는 진정하라는 듯 보온병을 건넸다. 벌써 수일, 반복되는 일이라 익숙한



탓이었다. 가게는 대체 언제 문을 여는 건지, 쿠로코는 참 별난 사람이었다. 실은 어느 조직 탈세용 가게인가 의심한 적도 있었고. 이른 저녁에 들려볼까 왔다 발걸음을 돌린 지 몇 번. 연락처를 남겨놓기도 그렇고. 그러다 문득 키세는 모모이가 생각났다.



밤샘 촬영을 마친 날이라 더욱 피곤하기도 했고, 운동삼아 걸어갈 테니 내려달라 한 뒤 목도리를 둘둘 감아 얼굴을 최대한 가린 키세는 찻집의 문을 벌컥 열었다. 이른 아침인 탓에 손님은 없었다. 한참 뭔가 준비하던 모양이었는지 모모이는 앞치마에 손의



물기를 슥슥 닦아내고 나오다 키세를 보고 놀란 듯 했다. 키세 씨, 어쩐 일이세요? 그게 말임다, 쿠로코씨는 가게 문 안 여나요? 아.......요 며칠 오픈할 일이 없긴 하나봐요. 모모이는 난처한 기색이었다. 차를 내올테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모모이의 말에 키세는 잠시 꽃집을 갔다 오겠다며 문을 나섰다. '오픈 시간 : PM 10시~AM 6시' ....무슨 꽃집 오픈 시간이 이래? 표지판에 작은 글씨로 적힌 시간에 키세는 기함했다. -그마저도 먼지에 가려져 있었다- 남들이라면 문을



닫을 때 문을 열었으니 키세가 와도 닫혀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시 돌아온 모모이의 찻집에는 예의 그 정체 모를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거 뭠까? 글쎄요, 저는 쿠로코 군이 준대로 준비하는 거라서요. 잘은 몰라요.



흠............ 우연의 일치였는지 아닐지는 마셔보면 판명될 일이었다. 조심스레 혀가 데이지 않도록 차를 마시며 키세는 모모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쿠로코 군, 부탁받은 것들 픽업하는 날만 가게 오픈하거든요. 요 며칠 없었나 봐요.



....그렇게 해도 장사가 돼요? 쿠로코 군의 안목은 제일이라서, 유명 인사들이 종종 찾아요.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요. 아니, 누가 봐도 장사 안 할 것 같아 보이게 생겼으니까 그렇죠. 키세는 무심코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참았다.



아무튼 고마워요. 영업 시간도 밤에나 열고 이상한 사람이야. 쿠로코 군, 야행성이라서요. 낮에는 보통 자요. ....햇빛을 좀 쬐고 그러지. 흡혈귀도 아니고. 다음부턴 아침에 와볼게요. 차 잘 마셨슴다. 돌아온 직후, 키세는 죽은 듯이 잠들었다.



이상한 사람의 이상한 가게의 이상한 영업시간. 오픈 시간을 확인한 이후에도 키세는 몇 번 찾았지만 매번 헛걸음이었다. 당분간 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스케줄을 잡지 않았긴 했지만, 키세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지?



하지만 수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모이의 찻집에서 매번 차를 한 잔 마시며 그녀에게 쿠로코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오면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한동안 일을 쉬고 있다 보니, 나가기도 귀찮아져 피부 관리실 방문 빈도도 줄었는데



숙면을 취하기 때문인지 상태가 아주 좋았다. 차에 무엇을 넣었는진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모못치, 나 요새 사람이 잠을 잘 자야 한다는 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슴다. 아침에 못 오는 날은 따로 보온병에 담아 줄테니 매니저가 픽업하면..?



숙면말고도 수확은 있었다. 키세는 모모이를 모못치라 부르게 되었고 모모이는 키세와 말을 놓는 사이가 되었다. 언제가 되었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하면 아침에 오기 어려울 테니 챙겨주겠다는 이야기에 키세는 눈인사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참, 맞다.



쿠로코 군, 내일은 가게 열 것 같은데. 에? 내일은 꼭 열 거야. 단골 손님이 기일 때문에 직접 꽃 사러 와. ....단골 손님이면 그 쪽도 유명인사? 음, 키세 군하고는 다른 느낌으로 유명 인사려나. 내일 보자는 모모이의 배웅을 뒤로 하고,



키세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최고급 거위털을 사용했다는 침구는 평소의 몇 배나 더욱 포근히 키세를 품어주었다. 잘 나가는 감독이나 투자자를 만날 때도 이런 적 없었는데. 키세는 새벽부터 드레스룸을 왔다갔다 하며 옷을 고르고 있었다.



하얀색 니트와 검은색 면 바지, 따뜻해 보이는 회색 롱코트를 입고 어울리는 구두와 시계 등을 착용하고서야 비로소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쿠로코의 가게 뒷편으로 가게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 차종이 주차되어 있었다. 키세의 차까지 합세하니 더욱 이상했다.



문을 열려는 찰나, 안에서 누군가 먼저 문을 열고 나왔다. 타는 듯한 붉은 머리의 남자. 아, 어디서 봤는데. .....아, 실례. 활동하는 거 잘 보고 있어요. 보기 좋게 호선을 그리며 인사한 남자가 멀어질 때야 키세는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



여기, 연예계 아니어도 와요? 아버지 아카시 마사오미의 뒤를 이어 벌써 3선에 성공했다고 했던가. 유명한 장기기사와의 훌륭한 대국으로도 유명했었지, 아마. 그러고 보니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셨다더니... 쿠로코는 덤덤히 대꾸했다. 보시다시피.



근데 갑자기 와도 놀라지 않네요? ....충분히 놀라고 있습니다만. 표정이 미비하게 바뀌는데 누가 놀랐다고 믿어줘요? 저는 표정이 풍부한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뭐...그렇다고 해줄게요. 그래서 어쩐 일로 오셨어요? 꽃집에 뭐하러 왔겠어요?



지인 부탁으로 꽃을 구해주는 것 뿐인데요. 그거 지금 우리 모르는 사이니까 가라는 거죠? .... 모못치는 유명인사 손님들 자주 온대서 그 정도 조건이면 차고 넘친다 생각해서 온 건데. .... 진짜 안 돼요? ....원하는 게 뭡니까.



에리카 씨한테 꽃바구니 선물해야 하는데 꽃집은 잘 몰라서요. 난 모르는 사람이지만, 에리카 씨는 잘 아니까 그 정으로 이번 한 번은 일단 넘어가 주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실제로도 에리카에게 축하할 일이 있긴 하니 완전 거짓은 아니니까.



키세는 순간적으로 잘 둘러댄 자신을 속으로 칭찬하며 쿠로코 뒤를 졸졸 따라갔다. 꽃은 어떤 것으로 하시나요? 직접 골라도 됩니까? 그러세요. 에리카의 평소 느낌대로 꽃을 이것저것 골라온 키세는 쿠로코에게 꽃다발을 쑥 내밀었다. 언젠가 청춘 영화에서



고백할 때 이런 장면을 찍었던 거 같은데.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들잖아. 안 받고 뭐한담. 키세 군, 아니 키세 씨. ...키세 군으로도 괜찮슴다. 저희 사이에 그건 아닌 것 같네요. 키세 씨. 꽃 종류는 잘 고른 것 같은데... 같은데....?



모두 활짝 핀 꽃이네요. ....그게 왜요? 활짝 핀 꽃을 주면 금방 시들어 버립니다. ...? 화병에 꽂아놓고 감상하려면 꽃봉오리가 살짝 열려있는 쪽이 좋아요. 조금씩 피어날 테니까요. .......아. 쿠로코 손에서 솜씨 좋게 바구니에 장식된



꽃을 받아 키세는 에리카를 찾았다. 어머, 료타가 무슨 일이야~ 나 부탁이 있는데요. 무슨 부탁? 료타가 나한테? 쿠로코 테츠야씨 꽃집 픽업 내가 맡으면 안 돼요? 료타가 그런 허드렛일 할 짬은 아니지 않아? 날 처음에 보낸 이유가 있던 거 아님까?



....앗, 역시 들켰나? 뭔지 몰라도 되니까 나한테 맡겨요. 나 촬영할 때도 생화 쓸래. 시드는 꽃은 흥미 없다며? 요즘 갑자기 흥미 생겼거든요. 나 차기작도 꽃 많이 나오는 거 찍을 거야. 흐응. 대가가 필요한 거면, 촬영 조건으로 에리카씨랑 같이



계약한다고 할게요. 그런 건 됐어~ 뭐, 생각보다 잘 되고 있는 거 같아서 놀란 거 뿐이니까. 알았어요, 그렇게 하지 뭐. 꽃바구니는 그럼 고맙게 받을게~ 그날 저녁, 키세는 모모이를 통해 쿠로코에게 메모를 전했다. 연락처와 짧은 글이 적힌 쪽지를.



키세 료타입니다. 에리카 씨 픽업은 제가 하게 되어서요. 가게에 따로 연락처 없다면서요? xxx-xxxx-xxxx 연락줘요. 에리카의 이름을 판 건 훌륭한 선택이라고 키세는 생각했다. 모모이 말에 의하면, 키세가 그냥 연락처를 남겨 놓았으면 보지도



않고 버려졌을 거랬다. 가진 거라곤 탁월한 친화력, 훌륭한 마스크. 처음은 핑계로 인연을 만들어 놓고, 차차 정들면 그 땐 내가 고객 자리 하나를 차지하면 되겠지. 그것이 키세의 큰 그림이었다. 너 요새 몸값 많이 올랐더라. 그래요? 갑자기 왜?



너 촬영 한참 쉬고 있잖아. 마음에 드는 거 없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안절부절하더라. 보통은 그 정도면 그냥 다른 사람 쓰지 않아요? 네가 아니었으면 그랬겠지. 요 얄미운 녀석. ....그쵸? 참 이상하단 말야. 뭐가? ...아무것도 아님다.



참, 부탁받은 거 대본 여기. 살다 보니 별일이네. 너 꽃 싫어한다더니 왠 꽃가게 사장 역을 한다고 해? 그런 게 있어요.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요? 전부터 너 캐스팅하고 싶다고 했는데 니가 싫어해서 못 준 거 뿐이다. 흐흥 아무튼 고맙슴다.



에리카 핑계로 꽃집을 들린 것도 제법 되었지만, 좀 더 확실한 핑계가 필요하지. 키세는 콧노래를 부르며 쿠로코의 꽃집으로 향했다. 또 저녁 안 먹었슴까? .... 꽃들은 그렇게 살뜰히 챙기는 사람이 대체 왜 자기 몸은 안 그래요? 이거 같이 먹어요.



저는 괜찮습니다만... 그럼 나 혼자 불쌍하게 먹으라고요? 집에서 먹으면 되..... 집에 나 혼자인데 외롭게 혼자 먹다가 목에 걸려서 그렇게 가고....신문 기사 1면에 실리겠죠. 인기 모델 키세 료, 불행한 죽음. 너무함다, 쿠로콧치.



...쿠로콧치는 뭔가요. 우리 얼굴 본지 제법 된 데다 동갑내기인데 애칭 정도 있어도 되지 않나 싶어서요. ㅍ.ㅍ........ 쿠로콧치한텐 강요 안 할게요. 그냥 부르기만이라도 하게 해줘요! ...알겠습니다. 그래서 저녁 먹자고 온 건 아니고 뭡니까



뭐, 저녁 같이 먹을 사람 없어서 온 것도 맞긴 한데..나 이번에 꽃가게 사장 역 받았어요. ....그래서요? 명색이 사장인데 꽃에 대해서 좀 알아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배역일 뿐인데도요?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잖아요. 도와줘요, 쿠로콧치.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한 쿠로코의 표정에도 키세는 눈 하나 깜짝않고 필살 눈빛을 시전하며 덧붙였다. - 누나 오피셜 부탁 1000% 성공 가능 - 쿠로콧치야 TV를 잘 안 보니 모르겠지만, 나 이래 보여도 직무에 충실한 사람이거든요.



하고 싶은 것만 골라 해서 그렇지 어쨌거나 배역과 관한 건 이것저것 배우고 하는 게 맞긴 했다. 무엇보다도 TV를 보지 않는 쿠로코가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키세의 행동을 한층 더 당당하게 만들었다. 알았습니다. 무엇이 알고 싶으세요.



딱 한 달만. 한 달 동안만 영업하는 날은 가게에서, 아닌 날은 저와 함께 이곳저곳 다니며 알려주세요. .......ㅍ ㅍ 무보수로 해달라는 건 아님다. 쿠로콧치가 원하는 대로 드릴게요. ....돈이 많다는 건 알겠지만, 백지 수표를 내미는 건 좀.



왜요? 제가 얼마를 쓸 줄 알고요. 뭐, 모자라면 뼛가루가 될 때까지 벌어야죠. ...... 그렇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까요. 키세는 넉살좋게 양파 그라탕 일부를 덜어 쿠로코에게 건넸다. 약간은 미지근해진 양파가 왜 그렇게 달았는지.



쿠로코는 기본적으로 충실한 사람이라 -밤에만 그렇다는 게 함정이지만- 정말로 약속한 시간에는 착실히 나왔다. 키세 군, 꽃말이 뭔지 아나요? 꽃들끼리도 말을 하나요? ...... 어이없는 표정을 하는 쿠로코를 본 건지 만 건지 키세는 태평했다.



말로 하기 어려울 때, 꽃을 주며 대신 마음을 전달해 줍니다. 아, 고백할 때 장미 100송이 그런거요? 네. 키세 군은 사랑 고백한다면 어떤 꽃을 줄 건가요? ....해바라기? 왜요? 태양만 쫓아다니는 꽃 아니예요? ..비슷합니다.



꽃말은 숭배, 기다림 그런 뜻이니까요. 엑?! 꽃말이 절절한 사랑 이런 거 아님까? ......혹시나 해서 묻는데 설마 모든 꽃이 '사랑' 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아니예요? ....갈 길이 멀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그럼 해바라기를 주며 고백하면 어떤 느낌이 돼요? 신을 경배하는 느낌의 사랑이나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선택해주길 기다리겠다 그런 느낌이 되겠죠? 꽃말은 그럼 꽃마다 다 다른가요? 여러 가지를 한 번에 갖고 있는 꽃도 있고요. 어렵네요......



돌아오는 길엔 쿠로코의 가게 선반에서 먼지를 먹고 있던 책 몇 권을 받았다. 대본을 외우는 것처럼 어디서 본 듯한 꽃이면 꽃말도 외워보라는 숙제였다. 그래서 말인데, 진짜 모르겠다니까요. 뭐가? 아오미넷치는 수선화 꽃말 알아요? 그거 그거잖냐.



그 뭐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거. .....뭠까, 그거. 변태 아니예요? 아 몰라 암튼 그런 거라니까.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나 요즘 꽃말 공부하고 있슴다. ....그걸 왜 해?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요. 있죠, 아오미넷치. 왜.



장미 색깔 별로 꽃말 다른 거 알아요? 몰라. 그냥 좋아하는 색 골라 주라는 거 아니였어? 나만큼이나 꽃말 무식자가 있어서 안심임다. 죽는다, 너. 악 끊지 마요! 그래서 왜 갑자기 꽃말 공부하냐고. 너 그거냐. 식물을 사랑하는...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는 그거랑 많이 다른 거 아니예요? 시끄러. 나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나보다 잘난 것도 없고 나한테 웃어주지도 않고 짐짝 취급이나 하는데 자꾸 신경 쓰이거든요. 화나? 아뇨, 그런 느낌은 아니고요. 자주 기웃거리게 돼요.



그럼 너 좋아하는 거네. 에? 네가 그 사람 좋아하는 거라고. .....말도 안 돼요. 왜 안돼? 좋아할 이유가 없는 걸요.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어야 해? 사랑하는 건 어느 순간 확 되버리는 거 아니냐? 바쁘니까 그만 얘기하고 끊자며 아오미네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뒤에도 한참 키세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키세 료타, 생각해보자. 쿠로콧치가 객관적으로 매력적인 이유. 첫 번째, 돈이 많다. 음....그렇게 영업해도 비싼 돈 주며 맡기는 사람들 꽤 되는 거 같으니까 이건 어느 정돈 맞는데...



그래도 나보단 아닌데. 두 번 째. 체구는 크지 않지만 외모가 매력적이다. 쿠로콧치 피부도 뽀얗고 귀엽긴 한데....객관적으로 내가 더 미인인 걸. 세 번째, 식물에 대해 해박하다. 이건 맞지만 내가 식물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데. 네 번째......



한참을 고민해도 명쾌한 해답은 없었다. 꽃말은 이제 제법 익힌 거 같으니까 다른 걸로 넘어가 볼까요. 꽃다발에는 꼭 꽃만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가지도 덩쿨도 열매도 데코에 같이 쓰일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솔방울로 장식한 꽃 본 적 있슴다.



네, 그런 거요. 저번에 보내주신 키세 군 나오는 부분 보다보니, 단순히 꽃만 파는 가게는 아니던데요, 그럼요? 그것도 모르냐고 힐책하는 듯한 쿠로코의 눈을 피해 키세가 조그맣게 항변했다. 꽃말 외우느라 바빴으니까 그렇죠. 카페도 겸하던데요.



꽃으로 장식한 케이크 같은 거요. 아. 대부분의 꽃들은 먹어도 되긴 하지만 오늘은 주로 요리에 많이 쓰이는 꽃과 허브들을 알아볼 겁니다. 허브? 키세 군이 매일 마시는 차에 들어있는 애들이요. ...그게 허브였어요? 네, 난 신기한 약초인 줄 알았죠.



대단한 건 아닙니다. 긴장을 완화시키는 허브들이 잠이 잘 오게 도와주는 것 뿐입니다.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서 놀랐습니다만. ....? 에리카 씨가 아는 사람이 잠을 잘 못 자는 거 같다고 했었거든요. 픽업 핑계로 보낼 줄은 몰랐지만. 아하.



자기 지인들을 이리저리 서로 소개시켜주는 것을 좋아하더니, 키세와 쿠로코를 연결시켜주려고 뜬금없는 심부름을 시켰던 모양이었다. 사람 관찰이 취미인 쿠로코에게 피로에 찌들은 키세의 기색을 알아차리는 건 어려운 것도 아니었을 테고. 쿠로코는 가게 한 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화분들 앞으로 키세를 데려갔다. 자그맣지만 오밀조밀 잎사귀를 달고 있는 화분들이었다. 이참에 차 한 잔 할래요? 좋슴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키세가 쿠로코를 알아온 이래로 가장 환히 웃는 모습이었다. 쿠로코는 소중히 잎사귀를



뜯어 내고 주전자를 가져오겠다며 사라졌고, 키세는 자신이 본 게 사실인지 눈을 의심할 뿐이었다. 쿠로콧치의 매력. 웃는 모습이 귀엽다.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한 번도 단 걸 먹지 않은 사람이 처음 단 음식을 먹을 때 이런 기분일까.



그 뒤로 키세의 눈은 집요하게 쿠로코를 따라다녔다. 쿠로코는 잘 웃지 않았다. 정확히는 환한 웃음을 짓는 일이 드물었다. 식물한테는 잘만 웃어주면서. 키세의 볼멘소리를 들었는지 모모이가 그를 돌아봤다. 응? 키세 군, 뭐라고 했어? 아님다.



차 우리는 방법도 다 알려줬고, 이제 며칠 안 남았지? 덕분에 촬영 잘 진행할 거 같슴다. 나중에 꼭 사례할게요. 사례는 됐어~ 그런데 모못치. 쿠로콧치 웃는 거 본 적 있어요? 응? 쿠로코 군 잘 웃잖아? ......? 키세 군한텐 아니야..?



나한테도 좀 웃어주지. 설마 처음 만났을 때 투덜댔다고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동안에도 딱 하나만 계속 맴돌았다. 쿠로콧치가 나한테도 웃어주면 좋겠는데. 그리고 그제서야 키세는 자신이 쿠로코를 좋아한다고 인정했다.



마지막까지 수고 많았습니다. 촬영하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아, 응. 그럴게요. 백지 수표는, 가져 왔어요? 아뇨, 천천히 채우게 되면 청구하겠습니다. 그래요. 마지막이니까 같이 파티 음식이나 먹어줘요, 당분간은 찾아오지 못할 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키세의 다리는 천근만근이었다. 그럴싸하게 자릴 마련해서 좋아한다는 말이라도 남겨 보고 올 걸 그랬나. 그랬으면 쿠로콧치 성격에 도망갔으려나. 미련이 새끼를 치고 또 치고. 끝나면 좋아한단 말이라도 남겨보자. 그렇게 생각했다.



촬영 핑계로 배우긴 했지만 쿠로코가 알려준 건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키세는 저도 모르게 하늘색 소품들이나 의상을 애용하고 있다 질문을 받기도 했고. 언젠가 인터뷰에서 화려한 불꽃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알고 보니 정반대였던 걸까.



조용히 불붙은 감정은 서서히 키세의 몸과 마음을 잠식해나갔다. 숯불처럼 은은히 타오르는 마음은 쿠로코와 비슷한 무언가만 봐도 고개가 돌아가게 만들고, 무심코 쿠로코와 함께 선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가끔은 상대 배우 대신 쿠로코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 없어져서 짐짝 하나 없다고 좋아하려나, 식물들에겐 아니, 나 빼곤 여전히 환히 웃어주려나. 별 거 아닌 상상에도 괜히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보고 싶어 죽을 거 같기도 하고. 그간 했던 연애는 정말 놀음 수준이었던 걸까.



어쩜 그리 빠져 버렸는지. 키세는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걷어 차이더라도, 호스로 물벼락 맞아도 고백은 꼭 해야겠어. 그냥 들어만 줘도 좋겠다. 내 마음이, 내 가슴이 어떤지. 원래도 뛰어난 재능이 있던 키세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체득하는 상황 덕에 더욱 깊이 있는 연기로 촬영은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고백하기까진 아직도 걸림돌이 있었다. .....쿠로콧치, 뭐 좋아하더라. 키세가 알고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식물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는 남자.



보통의 연인들이 그렇듯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야경을 바라보고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쿠로코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부담만 줄 건 뻔한 사실이었다. 모르겠다. 일단 부딪쳐 보지 뭐.



오랜만에 열고 들어선 문은 여전히 낡고 구석구석 먼지가 끼어 있었다. 쿠로콧치, 나 왔슴다. 저녁 안 먹었죠? 오랜만입니다, 키세 군. 드라마 대박났다던데요. ...봤어요? 아뇨, 모모이씨가 알려줬습니다. ...난 봐준 줄 알고 조금 설렜는데.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이제 다시 에리카 씨 픽업 제가 할 검다. ....그리고요? 나랑 내기 하나 해요. 어떤 내기요? 똑같은 허브 하나씩 키워서 더 잘 자란 쪽이 소원 들어주기, 어떻슴까? ....도박은 패가망신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그러지 말고요! 사실 이거 제가 밑지는 장사잖슴까. 쿠로콧치는 전문 분야, 난 아님다! .....그냥 차라리 소원을 들어달라고 하지 그래요. 들어줄 검까? 들어는 보겠죠. .......내기해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벽에 붙여 줘요. 뭡니까?



이번에 화보 촬영 사진 중 하난데 너무 잘 나와서요. 포스터 받아왔어요. ....그걸 왜 제 가게에...? 우리 사이에 그런 것도 안 돼요? ....붙여는 두겠지만, 우리 가게는 일반 손님은 안 와서 홍보 효과는 없습니다. 홍보해달라고 하는 거 아님다



이주일이나 참을 수 있을진 모르겠는데, 이주일 뒤에 다시 올게요. 잊지 말아요. 쿠로콧치를 이주일이나 안 보고 버틸 수 있을까. 키세의 마음은 된다, 안 된다 두 갈래로 나뉘어 격렬히 싸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더 간절한 마음으로 돌보면 좋은 걸.



사랑을 듬뿍 주면 된다고 했었지. 쿠로코의 수업 중에 배운 것이었다. 키세는 이주일 간 꼬박꼬박 화분에 -쿠로콧치라고 이름붙였다- 말을 걸고 잎사귀를 닦아주고 살뜰히 살폈다. 이기지 못한다면 다시 도전하지 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도전할 거야.



그리고 이 주 뒤 당연한 것이지만 키세는 쿠로코에게 졌다. 게다가 그 뒤로 세 번 내리 연속으로. ....키세 군, 이제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안 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얘들을 돌보고 있는데요! 키세 집 한 쪽에 먼저 자리잡은 화분 셋과



어울릴 만한 화분이 뭘지 고심하며 키세는 소리쳤다. 오기로 될 때까지 하겠노라 하긴 했지만 제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작은 식물 친구들을 돌보는 건 키세에게도 즐거움이었고. 이번에는 꼭 이길 거라는 키세에게 쿠로코는 이번에도 봐주지 않습니다, 답했다.



창가 한 쪽에 화분이 열 개가 넘어가는 동안 키세는 쿠로코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새해 선물을 떠넘겼고 받아냈다.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저 준 사람이 쿠로코라는 사실 만이 그를 들뜨게 했다. 날이 꽤 쌀쌀해 이젠 두툼한 겉옷을 입어야 했다.



화분은 어디에 있어요? 여깄슴다. 겉옷 지퍼를 내리고 속에 꼭 품어 온 화분을 본 쿠로코의 눈빛은 따뜻했다. 이번에는 키세 군이 이긴 거 같네요. 진짜요!? 주인 닮아 길쭉길쭉 자란 거 같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쿠로코의 화분은 아직도 자그마한



크기였다. 열 몇 개의 화분을 키우는 동안 키세는 쿠로코와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식물에게 환히 웃어주는 거, 고맙다는 말과 함께 뜯어낸 잎사귀로 차 한 잔 하기 따위. 그래서 소원이 뭔가요? 나한테도 환히 웃어줘요. 네? 그게 제 소원임다.



전 뭔가 다른 걸 얘기할 줄 알았습니다만...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했는데...안 놀란다고 하면 말할게요. 놀라도 모를 거라면서요. 지금은 알 거 같아요. 나도 왜인지는 모르겠슴다. 쿠로콧치가 좋아요. 왜 좋아하게 되었을까 고민도 해봤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정말 좋아하는 덴 이유가 없나 봐요. 모르겠어. 그냥 쿠로콧치 옆에 늘 있고 싶고 나한테도 웃어주면 좋겠고. 강요는 아님다. 그냥 한 번 정돈 말하고 싶어서. ... 이것도 수표에 같이 청구해요. 해바라기 한 송이를 쓱 내밀고 키세는



도망치듯 나갔다. 마음을 털어놓기만 해도 좋다곤 생각했지만 쿠로코의 반응에 따라 마음이 산산조각 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한참을 키세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키세 군, 요새 뭐 하고 살아? 아, 에리카 씨. 왜요? 또 심부름임까?



자기 백지 수표 준 적 있어? 아, 응. 근데 그게 왜요? 돌려주겠다던데~ 에? 직접 가서 얘기해봐. 쿠로코는 키세의 연락처를 갖고 있다. 직접 연락해도 될 것을, 굳이 전한다는 것은 키세가 전화해도 받지 않겠다는 뜻이겠지. 정중히 고백을 거절할까



쿠로콧치라면 그럴지도. 온갖 생각이 드는 와중에 키세는 멋들어지게 주차를 마쳤다. 조심스레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중에도 심장은 진정할 줄을 몰랐다. 어서 오세요, 키세 군. 수표는 왜 안 받슴까? 내가 고백해서 부담스러워서 그래요?



그렇다기보단 키세 군 습득이 잘 안 되어서요. A/S라고나 할까요. ...? 화보에 보니 아직 꽃 고르는 안목이 많이 부족하던데요. 얼마 전 찍은 화보 인터뷰에서 직접 꽃을 골랐다고 하긴 했지만 쿠로코가 볼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처음이었습니다. 패션 잡지를 사 본 건요. ! 이왕 제자로 받았던 것, 제대로 가르쳐줘야 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그럼.... 수업이 완료되면 그 때 청구하려고요. 그게 언제일까요, 쿠로콧치 아니 선생님. 평생 책임지고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ㅍvㅍ



쿠로코가 처음으로 키세를 보며 환히 웃어준 것을 마지막으로 키세의 이성은 뚝 날아갔다. 그저 쿠로코의 손을 붙잡고 잘 하겠다고, 고맙다고 수없이 말하던 기억만이 남았을 뿐. 그런데 왜 안 웃어줬대요? 키세 군이 너무 잘생겨서 긴장했었대. 아악



기분이 좋긴 한데 아악! 모못치 그럼 나 괜히 마음 고생했던 거 아님까?! ...ㅎㅎ....지난 일은 어쨌든 지금 잘 되었으면 괜찮지 뭐. 너무나도 잘난 얼굴이 원흉임을 안 것은 두 사람이 사귄다고 발표한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는데...(흐릿) 또 분량 조절 실패함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둘이 잘 살았다고 합니다..........이 이야기의 시작은 해바라기의 꽃말이 열렬한 짝사랑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매일 쿠로코 줬는데 알고 보니 아니래서 엑!! 하는 고딩



키세와 꽃 고르는 법 알려줘요!! 하고 수작부린(?) 키세에게 평생 책임지고 가르쳐 주겠다고 멋지게 고백해주는 쿠로코 소재의 콜라보였습니다...분량 조절 대실패였지만....낼 출근 전에 끝내고 싶어서 후다닥 마무리...일시러....죽...어......